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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19. 2023

스웨덴 집단면역, 근거가 있나요

2022년 7월 말 스웨덴에 올 당시 한국은 마스크 공화국이었다.

실외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됐지만 실내에선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경유지인 핀란드 헬싱키 반타 공항에서 환승할 때 PCR 검사 결과지, 백신 접종 증명서 등을 전혀 요구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반타 공항에서 승객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하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스톡홀름행 비행기 게이트 대기실에 오니 아무도 마스크를 끼지 않은 거였다.

우리 가족만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 이상해 마스크를 벗어버렸다.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꼈다.

그렇게 도착한 스웨덴은 이미 ‘포스트 코로나’였다.

스웨덴 통계청이 발표한 EU 31개국의 2020~2022년 초과사망률. 스웨덴이 4.4%로 가장 낮았다 (사진=europaportalen)

2023년 3월 스웨덴 통계청(SCB)은 2020~2022년 스웨덴의 초과사망률이 EU 31개국 중 가장 낮았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스웨덴 언론은 이를 제법 비중 있게 다뤘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3년간 스웨덴의 연평균 사망자 수는 그 이전 3년에 비해 4.4% 증가했는데 이는 전 유럽에서 최소치라고 했다.

스웨덴의 초과사망률(4.4%)은 인근 노르웨이(5%), 덴마크(5.4%), 핀란드(8.7%) 등 인접 스칸디나비아 국가보다 낮았다.

초과사망률은 일정기간 통상 수준을 초과해 발생한 사망자 숫자 비율을 말하는데 코로나 등 전염병이나 위기상황이 사망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됐다.

이 뉴스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건 스웨덴이 그동안 보여준 코로나 대응 때문이었다.

스웨덴은 2020년 초 코로나19가 유행할 당시 다른 나라와 달리 바이러스 침투를 막으려 해외 입국을 봉쇄하는 등의 강력한 방역조치를 하지 않았다.


2020년 1월 31일 스웨덴 첫 확진자 발생

2020년 2월 1일 코로나19 공중 보건 질병으로 분류

2020년 3월 11일 첫 사망자 보고. WHO의 코로나19 팬데믹 분류

2020년 3월 16일 스웨덴 공중보건당국의 70세 이상 외출 금지 '당부'. 회사 원격근무,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원격학습 '권장'

4월 6~12일 요양원을 중심으로 하루 100명이 넘는 사망자 발생, 총 737명이 숨져 코로나 팬데믹 기간 최대 사망자 수 기록

2020년 11월 펍과 주점 등 모임 인원 8명 미만으로 제한. 오후 10시부터 음주금지령

2020년 12월 중학교 운영 중단.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최대 8명 모임 허용

2020년 12월 27일 백신 접종 시작

2021년 1월 대중교통 출퇴근 시간 마스크 착용 '권고'

2021년 1월 10일 전염병 법 도입

2021년 3월 모든 음식점과 레스토랑 영업시간 오후 8시 30분 제한. 백화점, 상점, 목욕탕, 체육관, 스포츠시설의 허용 인원 500명으로 규제

2021년 9월 29일 돌봄과 사회복지시설 감염 예방조치를 제외한 모든 제한 해제

2021년 12월 공공모임, 대규모 실내 행사에 백신접종 증명서 지참 필요

2022년 1월 식당과 술집 영업시간 제한

2022년 2월 9일 모든 코로나 방역 조치 해제. 진단검사 중단

2022년 4월 1일 전염병 법과 감염 예방 조치에 관한 법률 폐지. 코로나19의 일반적이고 사회적으로 위험한 질병 분류 제외


스웨덴 보건당국의 코로나 주요 대응 일지였다.

코로나 대응 초기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방역이 강화 돼온 과정이었다.

강력한 코로나 방역 대책을 내놓은 다른 나라에 비해 스웨덴의 코로나 대처는 확실히 느슨하긴 했다.

시민을 통제하기보단 자율과 자발적 거리 두기로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정책을 취했다.

호흡기로 전파되는 코로나19의 특성상 다른 국가들은 감염을 막으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어기면 처벌까지 했지만 코로나 유행 초기 스웨덴 정부는 국민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웨덴 국가 역학자인 Anders Tegnell는 2020년 4월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면 팬데믹 확산을 늦출 수 있다고 조언한 유럽 질병 예방 및 통제 센터(ECDC)에 우려를 표명하며 "마스크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공기를 통해 코로나 감염이 확산된다는 것도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스웨덴이 구성원 상당수가 감염으로 항체를 가져 더는 유행병이 확산하지 않는 집단면역을 추진한다는 말이 나왔다.

스톡홀름 시의 사회적 거리두기 홍보 (사진=Dagens Nyheter)

하지만 스웨덴의 집단면역 전략은 일관성 있게 추진된 것은 아닌 듯했다.

첫 확진자 발생 이후 10개월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뒤늦게 모임 인원을 제한하는 등의 방역조치가 이뤄졌다.

코로나 대유행 1년여 후 북유럽에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자 그제야 대중교통 내 항시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고 레스토랑, 술집 등의 영업 중단을 발표했다.

그 사이 예상보다 이르게 코로나 백신이 개발됐고 스웨덴은 비교적 빠르게 백신 접종률을 높였다.

이를 바탕으로 1년 뒤인 2022년 2월 대부분의 방역 조치를 해제하고 진단검사도 중단했다.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위드코로나'를 발표한 것이었다.

이런 스웨덴의 느슨한 코로나 대응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과 거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초기 요양원 집단감염으로 고령환자들이 대거 사망하자 스웨덴의 집단면역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코로나 사망자수는 감소세로 접어들었고 다시 스웨덴의 대응이 적절했다는 상반된 평가도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스웨덴의 초과사망률 최소 보도는 자연스럽게 스웨덴의 집단면역이 성공한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의 백신 접종 행렬 (사진=Dagens Nyheter)

다겐스 니히터(Dagens Nyheter)의 알렉스 슐만 칼럼니스트는 "스웨덴의 초과사망률 수치는 팬데믹 발생 3년 만에 스웨덴 공중 보건 당국이 한 일이 현명하고 옳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이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실제로 다른 대부분의 국가보다 코로나를 더 잘 관리했다는 통찰"이라고 추켜세웠다.


인근 국가인 핀란드의 코로나 대응 관리를 이끈 미카 살미넨(Mika Salminen)은 "처음엔 스웨덴의 초과사망률이 정말 사실인지 의심할 정도로 너무 놀랐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수치"라며 "다만 초과사망률이 코로나 대유행의 영향을 비교하는 데 사용되긴 하지만 바이러스 관리가 얼마나 성공적인지 평가하려면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초과사망률 통계의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스베리예 라디오(Sveriges Radio)의 과학 해설자 Ulrika Björkstén은 중립적인 의견을 보였다.

그는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과장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비교 대상 국가의 다양한 연령 구조를 고려하지 않았고 스웨덴은 코로나 초기 노인 사망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나중에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할 수 있는 허약한 노인이 더 적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 국가 역학자 Anders Tegnell(사진=Dagens Nyheter)

그럼 한국의 질병관리청장에 해당하는 스웨덴 집단면역 전략을 실행한 국가 역학자 Anders Tegnell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초과 사망률 측정에는 약점이 있으며 다른 국가에서 인구 구조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어쨌든 이 조치(집단면역)에 관한 한 스웨덴은 분명히 꽤 잘 해냈다"며 결국 통계의 약점에도 스웨덴이 코로나 대응을 잘했다고 말한 셈이다.

Anders Tegnell은 초기 코로나 감염으로 사망자가 속출하자 전 세계적인 조롱과 비판을 받았으며 신변의 위협을 느껴 한동안 경찰의 보호를 받았다.

지난 총선에서 제2당으로 올라선 스웨덴 민주당 대표인 지미 오케손(Jimmie Åkesson)으로부터는 사임 압박을 받기도 했다.


공공의료 체계인 스웨덴은 우리나라만큼 충분한 공공, 민영 의료시설과 의료진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K-방역 같은 강력한 대응을 하려야 할 수 없어 혼란을 피하려고 불가피하게 집단면역을 한 거 아니었느냐는 비판도 있다.

실제 스웨덴의 더딘 의료 경험을 해보니 충분히 일리 있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유럽만 놓고 본다면 국경을 틀어막고 방역조치를 한 국가와 집단면역을 추진한 스웨덴과의 코로나 사망률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은 듯했다.

사회, 자연환경이 비슷한 북유럽 국가와 비교하면 스웨덴의 인구 대비 코로나 사망률은 0.9%로 핀란드 0.6%, 노르웨이 0.4%, 덴마크 0.2%보다 오히려 높다.(한국은 0.1%)

초과사망률 통계로만 스웨덴의 집단면역 정책을 평가하기엔 빈틈이 많아 보였다.

코로나 환자 치료하는 스웨덴 의료진 (사진=Dagens Nyheter)

반면 K-방역도 공공과 민영 의료로 양분된 우리나라 의료체계니까 수년간 코로나 추적 조사와 방역관리를 해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의료진과 국민의 무한 희생을 담보로 한 거긴 하지만 말이다.


지나고 보니 좀 과하게 겁먹고 어떤 과학적인 근거에 입각한 것이 아닌 공포심에 마스크를 쓰라고 하니 쓰고 백신을 맞으라고 하니 맞은 거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코로나가 인간에게 미친 영향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2023년 3월 기준 전 세계에서 6억7천500만명이 코로나에 감염됐고 690만명이 사망했다.

110만명이 숨진 미국은 코로나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였다.

인구 비율로 보면 페루가 인구 10만명 당 660명 이상이 사망해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배포된 백신은 133억회 분량이었다.


어쩌면 공적자금 등의 지원을 받아 백신 만들어 판매한 제약회사가 코로나 시국의 진정한 위너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초기 효과가 없어 물백신이라는 악평이 쏟아진 백신을 만든 제약업체 아스트라제네카가 스웨덴과 영국의 합작회사였다는 사실을 스웨덴에 와서 알았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스톡홀름 근교에 회사와 공장이 있었다.


스웨덴 정부는 어떤 과학적 근거를 분명히 내세우며 '집단면역 전략'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집단면역의 전제는 한번 감염된 환자에게 지속적인 항체가 형성돼 더는 감염이 확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코로나19는 각종 변이 발생과 함께 재감염 사례가 속출했다.

스페인에서는 61000명의 확진자를 상대로 한 연구에서 항체 양성 반응을 보인 이들이 2주 후 재검사에서 항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결과도 있었다.

스웨덴 정부는 결과적으로 이런 점들을 간과한 셈이었다. 코로나를 끝낸 것도 사실상 백신이라고 봐야 했다.

광범위한 감염에 의한 항체 형성이 아닌 백신 예방접종에 의한 집단면역에 더 가까웠다.

감염으로 집단면역을 형성한다는 계획도 건강한 젊은 사람들에게는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취약층인 노인이나 노령환자를 피해 간다는 보장도 없었다.

이는 실제 요양원 고령환자의 집단감염에 이은 사망자 증가로 초기 스웨덴 대응이 실패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것은 스웨덴이 사실상 코로나 대응에 손을 놓고 주변 국가들의 우려와 질타가 있었음에도 스웨덴 국민 상당수는 정부를 지지했다는 점이었다.

2020년 4~6월 사망자가 속출한 뒤 첫 여름휴가 시즌에 스웨덴 국민 일부는 코로나 유행에도 아랑곳없이 스위스, 스페인 등 유럽 휴양지로 휴가를 떠났다. 휴가 시즌이 끝나고 돌아온 여행자들은 자가격리도 없이 일터로 복귀했고 스웨덴에서 코로나 2차 유행이 시작됐다.

주변국에 민폐가 될 수 있는 행태였고 한국 등 강력한 코로나 방역 조치를 취한 나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부의 느슨한 코로나 정책 때문인지는 몰라도 분명 스웨덴 국민의 코로나 인식 역시 보통의 국가와는 달랐다.

스웨덴 정부와 국민은 전 세계가 코로나 공포에 휩쓸리는 동안 자신만의 길을 선택했다.

네덜란드와 영국 정부도 처음엔 스웨덴의 길을 가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인한 입원율과 사망률이 급증하자 노선을 바꿨다.


스웨덴 작가인 요한 보난데르(Johan Bonander)는 "WHO의 방역 통제와 마스크 착용 매뉴얼에 대해 독립적인 평가를 할 용기를 가진 나라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평가했다.

그는 "많은 국가에서 적용한 엄격한 봉쇄 조치는 비효율적이고 인적 비용도 많이 들었으며 두려움과 고립으로 심리적 고통을 초래했다"며 "코로나 이후 WHO 권고는 더 구속력을 가지게 될 것인데 스웨덴의 독립적 판단은 그에 대항하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고 말했다.

반면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뉴욕 대학교 탠던 공대 교수는 "시민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함으로써 예방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학문적 실수를 넘어선 직업적 잘못이며 통치 윤리에도 위배된다"고 스웨덴의 코로나 대응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집단면역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의 세련된 의학적 표현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스웨덴 의학, 과학계에선 코로나19의 부실한 정부 대응을 면밀히 분석해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다른 팬데믹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스웨덴의 집단면역 전략이 윤리적, 의학적, 학문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걸 제대로 평가할 지식이나 통찰이 내겐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스웨덴이니까' 집단면역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스웨덴은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확실히 독보적이었다.


# Dagens Nyheter, europaportalen, Svenska Dagbladet, varldenidag, science.org, theguardian.com, 연합뉴스, 네이버 코로나 세계 현황 등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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