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기억수퍼 03화

기억수퍼 – 17 흥겹고 슬픈 상여 행렬

by Li Pul



시끄러운 상여놀이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발인, 발인제, 운상이 시작된다. 고인을 이제 산에 묻으러 집을 떠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발인일을 3, 5, 7일 등 홀숫날을 선택하는데 이는 짝숫날에 발인하면 또다시 상이 난다는 속설 때문이다.

상여가 집을 떠나기 전에 발인제를 간단하게 드린다. 이제 집을 영영 떠난다고 고인에게 알리는 것이다.


운상(運喪)은 상여가 출발하는 것을 말한다. 도중에 노제를 지내기도 한다. 평소 망자가 즐겨 다니던 곳이나 의미 있는 곳을 상여가 둘러보는 것이다. 장지로 가는 동안 다리 앞에서 상여를 멈추고 상두꾼들이 돈이나 먹을 것을 상주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상여 행렬은 명정(銘旌), 공포(功布), 만장(輓章), 요여(腰輿), 방상(方相), 상여, 상주, 조문객의 순서가 된다. 명정은 관을 묻을 때 관 위에 덮는 깃발이고, 공포는 관을 닦을 때 사용하는 삼베를 가리킨다. 요여는 매장 후 집에 돌아올 때 혼백을 모시는 작은 가마인데 영정사진으로 대체하고 있다.

방상은 길을 가는 도중이나 매장지에서 혹시라도 장난질 칠지도 모르는 잡귀를 물리치는 호위 천사 역할을 한다. 그래서 존칭을 붙여 방상시(씨)라고 부른다. 보통 두 명이 담당하는데 눈이 네 개인 탈을 쓰고 손에는 창이나 칼, 방패를 들고 행렬 내내 잡귀가 오지 못하도록 좌우로 창이나 칼을 휘두른다.


상여 행렬은 장지까지 가는 내내 선소리꾼의 요령과 매김소리를 일정한 소리로 받는다. 일종의 노동요이면서 망자와 상주를 위로하는 노래인 셈이다. 남도의 일부 지방에서는 유행가를 부르기도 한다. 장례를 하나의 흥겨운 잔치로 만드는 것이다.

장지에 도착하면 상주는 망자에게 마지막으로 절을 하고 방상은 광중에 들어가 악귀를 쫓는다.


초등 오 학년 때의 기억이다. 읍내에서 옹기장사를 하는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발인하는 날 담임이 부르더니 반장이니까 거기를 다녀오라고 했다. 애가 뭘 아는가. 평소 입던 옷을 입은 채로 친구네 옹기 가게로 갔다.

막 상여가 떠나려고 했다. 친구의 이름은 구자두(훗날 구씨 집안의 滋자 돌림이 LG 가문인 것을 알고, 혹시 그 친구도? 했던 기억). 자두 엄마의 울음소리가 낭자하게 퍼져 저절로 숙연하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함께 간 부반장 여학생은 그 소리만 듣고 돌아서서 훌쩍거리다가 무섭다며 다시 학교로 가버렸다. 외아들 자두는 그 작은 몸에 굴건 제복을 걸치고 지팡이를 집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여가 출발하자 따라나섰다. 그냥 학교로 돌아가도 될 것을 호기심 반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 반으로 상여 뒤꽁무니를 따라간 것이다(공부하기도 싫었고).


가을하늘 아래 퍼지는 상여소리는 흥겨웠다. 가난했던 터라 상여는 작았고 따르는 조문객도 적어서 행렬은 단출했다. 그래서 소풍 가는 모양새 같았다.

잘 진행되던 운상이 두 시간쯤 지나 사단이 일어났다. 그동안도 몇 차례 다리를 건널 때마다 상여가 멈췄고 그때마다 상주가 얼른 달려 나가 미리 준비해두었던 돈 봉투를 내놓았다. 장지 가는 길에 유독 다리가 많았던지, 아니면 상주가 뭘 모르고 준비한 돈봉투를 너무 빨리 소진했는지 상여가 또다시 다리 앞에서 멈추었는데 내놓을 봉투가 떨어진 것이다. 두어 차례는 그냥 봐주더니 세 번째부터는 아예 땡깡이었다. 상주가 아무리 두 손 모아 싹싹 빌어도 상여는 제자리걸음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친척 어른들이 나서도 소용없었다(자두 엄마는 따라오지 않았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상여는 움직이지 않자 상주는 애걸복걸했다. 그러다가 그만 상여 앞에서 대굴대굴 구르며 울부짖는데도 상여꾼은 모른 척했다. 상여를 따르던 조문객이 나서서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고, 애가 불쌍하지도 않으냐고 삿대질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 지나가던 일끝 내고 집에 가던 농부가 그걸 보았다. 그가 다짜고짜 들고 있던 시퍼런 낫을 선소리꾼 목에다 걸고는 빨리 안 가면 목을 치겠다고 호통을 치자 그제야 못마땅한 얼굴로 상여를 출발시켰다.


장례 나기 전해 겨울 크리스마스 때 자전거 타고 집으로 찾아와 뜬금없이 카드를 주고 가던 자두. 그때는 시골에 그렇게 하는 애들이 없었다. 이게 뭔가 싶어 카드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우리 집 주소는 충의동 몇 번지야!” 소리치고 사라지던 자두.

이름도 그렇고, 장례의 기억도 있어서 육 학년 때 서울로 전학 갔건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자두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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