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기억수퍼 02화

기억수퍼 – 18 기억에 남은 상처 자국

by Li Pul

“안녕하세요, 가온씨.”

가온 씨가 기억수퍼에 찾아온 이화 씨의 손을 잡아준다. 이화 씨는 이야기를 쏟아 놓는다.


저는 1남1녀 가정의 맏이고 남동생은 10년 만에 태어난 4대 독자입니다. 제 여동생은 낙태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저도 첫째가 아니었으면 죽었겠죠.

십여 년 전에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 저는 작은 방, 남동생은 큰방을 차지했어요. 그런데 남동생이 자기 방의 외풍이 세고 춥다고 하자 풍수지리를 들먹으며 저와 방을 바꾸게 해서 저는 덜덜 떨며 만성 기관지염을 달고 살았습니다. 아프면 혼나고요. 열 살 때는 남동생 밥을 안 차려줬다며 따귀를 맞았습니다.

고3 때 방에서 공부하는데 고3이라고 유난 떤다면서 갑자기 맞았어요. 어느 날은 말도 못하고 혼나고 있는데 속으로 엄마 욕했지,라고 하시며 때리셨고요.

그런데 아침밥은 늘 차려주시고 학교 학원 다 보내주시고 옷도 사주고 부모로서 해야할 것들은 다 지원해주십니다. 말로는 항상 사랑한다면서 오늘은 또 자기 화장품 없어졌다고 때렸어요. 그런데 그게 서랍에서 나왔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해요.

남동생에게는 어떤 잘못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아요. 그러면서 똑같이 사랑한대요. 유산은 다 남동생 것이래요. 자기는 아들딸 차별한 적이 없대요.


어머니와 저 사이에 분명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제가 성인이 된 후였어요. 그 나이가 되서 엄마와 대화로 풀려니 나잇값 못 하는 행동인 것 같아 말을 안 했어요. 직장 다니면서 엄마랑 따로 살아 몇 년간 불안 증상이 없어져서 괜찮은 줄 알았어요. 요즘 열흘 정도 엄마랑 같이 지내게 되었는데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요. 계속 자살밖에 안 떠올라요. 몸이 꽉 조여오는 느낌이 들어요. 엄마한테 제가 엄마를 무서워한다는 걸 들키면 엄마가 기뻐하면서 더 못되게 굴까봐 겁나요. 엄마가 제 불만에 상처받고, 저를 더 싫어하고 남동생을 지금보다 더 좋아할까봐 걱정되요.


애초에 엄마 기분이 안 좋으면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 말도 안 나와요. 제가 엄마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걸, 반항하지 않는 저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것을 다 아는데 저를 미워할까 봐, 저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릴까 봐 두려워요.

저는 자존감이 낮은 인간이에요. 이런 모녀 관계 때문인지 항상 저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고 잘났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불편해하고 멀리해요.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단점 때문에 어울렸으면서 그 단점에 진절머리 치는 구제 불능이에요.


엄마와 함께 보내야 하는 열흘에 이제 하루가 지났어요. 남은 날을 제가 버텼으면 좋겠어요. 정말 죽고 싶지 않은데 엄마가 옆에 있으면 계속 너무 힘들고 안 좋은 생각이 멈추지를 않아요. 엄마를 어떻게 할까요.


가온 씨는 들어주는 사람. 따뜻한 눈빛으로.

keyword
이전 01화기억수퍼 – 19 검은 상여 리어카, 아름답고 슬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