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가온씨.”
가온 씨가 기억수퍼에 찾아온 이화 씨의 손을 잡아준다. 이화 씨는 이야기를 쏟아 놓는다.
저는 1남1녀 가정의 맏이고 남동생은 10년 만에 태어난 4대 독자입니다. 제 여동생은 낙태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저도 첫째가 아니었으면 죽었겠죠.
십여 년 전에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 저는 작은 방, 남동생은 큰방을 차지했어요. 그런데 남동생이 자기 방의 외풍이 세고 춥다고 하자 풍수지리를 들먹으며 저와 방을 바꾸게 해서 저는 덜덜 떨며 만성 기관지염을 달고 살았습니다. 아프면 혼나고요. 열 살 때는 남동생 밥을 안 차려줬다며 따귀를 맞았습니다.
고3 때 방에서 공부하는데 고3이라고 유난 떤다면서 갑자기 맞았어요. 어느 날은 말도 못하고 혼나고 있는데 속으로 엄마 욕했지,라고 하시며 때리셨고요.
그런데 아침밥은 늘 차려주시고 학교 학원 다 보내주시고 옷도 사주고 부모로서 해야할 것들은 다 지원해주십니다. 말로는 항상 사랑한다면서 오늘은 또 자기 화장품 없어졌다고 때렸어요. 그런데 그게 서랍에서 나왔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해요.
남동생에게는 어떤 잘못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아요. 그러면서 똑같이 사랑한대요. 유산은 다 남동생 것이래요. 자기는 아들딸 차별한 적이 없대요.
어머니와 저 사이에 분명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제가 성인이 된 후였어요. 그 나이가 되서 엄마와 대화로 풀려니 나잇값 못 하는 행동인 것 같아 말을 안 했어요. 직장 다니면서 엄마랑 따로 살아 몇 년간 불안 증상이 없어져서 괜찮은 줄 알았어요. 요즘 열흘 정도 엄마랑 같이 지내게 되었는데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요. 계속 자살밖에 안 떠올라요. 몸이 꽉 조여오는 느낌이 들어요. 엄마한테 제가 엄마를 무서워한다는 걸 들키면 엄마가 기뻐하면서 더 못되게 굴까봐 겁나요. 엄마가 제 불만에 상처받고, 저를 더 싫어하고 남동생을 지금보다 더 좋아할까봐 걱정되요.
애초에 엄마 기분이 안 좋으면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 말도 안 나와요. 제가 엄마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걸, 반항하지 않는 저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것을 다 아는데 저를 미워할까 봐, 저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릴까 봐 두려워요.
저는 자존감이 낮은 인간이에요. 이런 모녀 관계 때문인지 항상 저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고 잘났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불편해하고 멀리해요.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단점 때문에 어울렸으면서 그 단점에 진절머리 치는 구제 불능이에요.
엄마와 함께 보내야 하는 열흘에 이제 하루가 지났어요. 남은 날을 제가 버텼으면 좋겠어요. 정말 죽고 싶지 않은데 엄마가 옆에 있으면 계속 너무 힘들고 안 좋은 생각이 멈추지를 않아요. 엄마를 어떻게 할까요.
가온 씨는 들어주는 사람. 따뜻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