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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 Pul Nov 10. 2023

니체 씨,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 3

상담이 일찍 끝나면 서둘러 청량리역으로 갑니다. 4시 22분 기차. 일찍 간다고 기차가 빨리 오는 게 아닙니다. 역에 딸린 백화점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개찰구를 지나 백화점에 닿으면 지하 2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천천히 8층까지 올라갑니다. 식당가와 카페 있는 곳을 한 바퀴 휘돌고 이번엔 3층까지 내려갑니다. 3층은 역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남아있다면 다시 한번 더 올라갔다 내려오기.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물끄러미 ‘사람’을 봅니다. 쇼핑객이 많지 않은 한가한 시간. 여유 있게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 짧은 시간이지만 이때 보는 사람 숫자는 시골에서 일주일 내내 보는 사람보다 많습니다. 그것도 훨씬! 

 외로운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을 보는 것만 해도 마음의 우울이 씻기는 기분입니다. 눈과 뇌세포에 덮여있던 어떤 비닐이 벗겨지는 느낌입니다. 아이러니지요.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성격에 이러는 것이.     

 

청량리 역사에 가면 종종 세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요즘은 잘 안 보이던데).

 한 사람은 서른쯤의 여자. 중얼중얼 연신 입안에 소리를 내며 맞이방 넓은 홀을 가로세로 직진으로 걷습니다. 걷다가 의자나 사람, 벽에 부딪히면 180도 돌아서 다시 직진. 그러다가 뭔가 만나면 다시 180도 돌아서 직진. 정확히 180도가 아니니까 같은 방향일 때는 없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을 봐서는 정신이 온전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한 사람은 중년 남자. 이 사람도 쉴 새 없이 중얼거립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뻐꾹, 뻐꾹!” 뻐꾸기 소리를 냅니다. 누가 보건 말건 뻐꾹뻐꾹 웁니다. 홀을 이리저리 걸으며 뻐꾹뻐꾹. 

 세 번째 사람은 20대 여자. 아마 기차 승객 같습니다. 이 친구는 빠른 걸음으로 홀을 빙빙 돕니다. 팔도 힘차게, 다리도 힘차게. 독특한 걸음이어서 단박 그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기차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운동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니체 씨, 건강을 이유로 매일 산책을 하셨다고요. 그것도 하루 8시간씩이나!

 일본의 저명한 에세이스트가 니체 씨에 대해 쓴 글을 보면, 니체 씨의 산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유 있는 산책이 아니라 거의 달음박질 수준이었다고 하네요. 8시간 내내 그랬을 리는 없겠지만 무척 빠르게 걸었으니 그런 말이 나왔겠지요. 

 물어보면 청량리의 세 사람도 산책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누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쇼핑하는 사람들을 넋 놓고 바라보는 나에게 뭐하냐고 묻는다면, 저 역시 산책이라고 대답했을 겁니다.     

 

니체 씨, 오늘도 묻습니다. 숨 가쁜, 이상한 산책 후의 기분이 어떠냐고요. 그래서 니체 씨의 글이, 주장이 이해하기 힘든 거냐고요. 시골에 살면서, 외로움에 빠지면서 저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까 봐 걱정되어서 묻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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