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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 Pul Jan 11. 2024

니체 씨,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_ 지휘자

# 17 _ 내 삶의 지휘자는?

# 17 – 내 삶의 지휘자는?

     

 KTX를 타면 등받이에 잡지가 꽂혀있습니다. 1월호에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언제부터 지휘자가 생겼을까? 기사는 이 질문부터 시작합니다.

 

작곡가는 자신의 곡 앞머리에 연주 속도에 대해 지정해 놓습니다. 곡 중간에도 여러 지시 사항을 표시합니다. 느리게, 부드럽게, 우아하게, 점점 작게, 걷는 속도로 등등. 작곡가의 당부가 있기는 하지만, 우아하게, 부드럽게, 걷는 속도는 연주자마다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연주해도 연주자마다 다른데, 여러 사람이 함께 연주할 때는 이걸 맞추는 게 쉽지 않습니다.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15분 내외여서 연주자들이 눈치껏 맞출 수가 있습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45분. 처음엔 눈치껏 맞춰갈 수 있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집니다. 빠르기의 유지는 물론, 셈여림, 들어갈 곳과 멈출 곳 등 누군가가 사인을 줄 필요가 생겼고, 그래서 탄생한 게 지휘자라는 겁니다.

 지휘자가 있다고 다 해결된 건 아닙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만 해도 조 엘리엇 가디너는 59분에 연주했는데 오토 클렘퍼라는 지휘자는 80분에 연주함으로써 같은 곡의 연주 시간이 무려 19분이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니체 씨가 하루 일과 중 빼지 않고 매일 한 것이 바로 산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산책이라는 게 느긋하게, 주위 사물을 여유롭게 보며 걷는 게 아니라 거의 달음박질 수준이었다고 하지요. 지금은 그런 걸 산책이라 하지 않고 조깅이라 합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산책의 속도가 달라졌다면 바흐 시대, 베토벤 시대의 셈여림과 빠르기, 부르럽기, 우아하기가 다 달라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흔히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큼 하는 게 최선을 다한 걸까요? ‘사랑하라’고 합니다. 얼마큼 사랑해야 정말 사랑하는 건가요? ‘열심’은 또 어떻고요. ‘솔직’은 또...

 상담하다 보면 “죽을 만큼 열심히 하는데도 안 되요”하며 숨을 몰아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이 보기엔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은데. 그런 사람에게 “아니야,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더 힘을 내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능력치가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라고 한 니체 씨. 욕망과 희망은 어느 선에서 구별되는 건가요. 휴식 혹은 여유와 게으름, 권태는 어느 지점에서 결정되는 것인지요.

 그나저나, 내 삶의 지휘자는 나 자신이고 싶은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느낌이어서 곤혹스럽습니다. 재정이며, 건강이며, 글 쓰기 등등. 새해를 맞았지만 내 삶의 속도는 얼마로 정해야 할지 이 또한 모르겠습니다. 

 지휘자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삶의 속도를 잠시 생각해 본 거니까 니체 씨, 너무 신경 안 써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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