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 삶의 가벼움 혹은 무거움
#18
삶의 가벼움 혹은 무거움
꽤 오래전에 읽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습니다. 첫 문장은 니체 씨, 당신의 ‘영원회귀’에 대한 언급입니다. 쿤데라는 영원히 회귀하는 역사, 사상 등을 무거움으로 설정하고, 단 한 번만 사는 인생을 가벼움으로 설정하여 삶과 역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반복하여 비교합니다. 형식은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소설이지만, 스토리 중간중간 계속해서 영원회귀에 대한 쿤데라 자신의 해석을 설파합니다.
우리의 삶이 복잡다단하고, 무척이나 개인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결국엔 똑같은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게 니체 씨의 생각 같습니다. 여기서 ‘같다’고 하는 건, 솔직히 말해 아직도 니체 씨의 생각을 다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저만 그런 건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삶을 앞에 두고 우리는 허무적인 태도와 긍정적인 태도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미 운명이 결정되었다고(영원회귀라고) 믿는 사람은, 노력해도 거기가 거기이므로 인생을 편하게(가볍게) 살게 되며, 반대로 우리가 영원회귀에 있을지라도 그 속에서 자신을 살아 있게 만드는 가치를 찾는 ‘긍정의 삶’입니다. 물론 니체 씨는 우리에게 카르페 디엠 즉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현재에 최선을 다해 긍정의 삶을 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영원회귀’를 자기 계발서의 주요 테마처럼 강조합니다만).
밀란 쿤데라는 말합니다.
“우리 인생의 매 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 영원성에 못 박힌 꼴이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잔혹하다. 영원회귀의 사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무거움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무엇을 택할까? 무거움? 가벼움?”
밀란 쿤데라는 소설 내내 두 주인공 토마시와 테레자의 행동을 통해 운명의 무거움 혹은 가벼움, 삶의 무거움 혹은 가벼움을 변주곡처럼 ‘보여주고’ 있는데 과연 어떤 것이 옳은지 혹은 좋은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겠습니다.
다시 생각하면 니체 씨도 그렇고 쿤데라도 그렇고, 삶을 가벼움과 무거움의 둘로 나누는 이분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편의상’이라고 해도 과연 삶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기나 하는 걸까요.
오늘 따라 몹시 추운 강원도의 겨울밤. 초저녁에 선잠에 들었다가 깨어나 창으로 보이지도 않는 밖을 내다보며, 창에 얼비치는 낯익은 혹은 낯선 노인의 얼굴을 흘끗거리며 영원회귀를 생각하는 내 삶은 과연 무거운가, 가벼운가. 이런 생각은 유익인가, 무익인가. 이게 내 남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리고, ‘옳은 삶’을 택해야 하나, 아니면 ‘좋은 삶’을 택해야 하나. 옳다고 내게 좋은 삶이 될 수도 없고, 내게 좋다고 옳은 삶도 아닐진대. 어느 쪽이든 내게 그걸 택할 여력이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마음이 추운 겨울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