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 문장 공부
# 19 – 문장 공부
일본에서 시작된 문학 형식인 하이쿠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이쿠는 인간이 만든 문학 형식 가운데 가장 짧다고 하지요. 5-7-5 모두 열일곱 자로 완성되는 짧은 정형시입니다.
하이쿠에 관심 두게 된 것은 몇 안 되는 단어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매력 때문이었는데 새삼 이걸 시작한 것은 문장 공부를 위해서입니다. 단어를 극도로 아껴 사용하면서, 은유를 통해 또는 침묵을 통해 전달하는 매력과 함께 단어를 선택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문장 공부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하고, 뭐 어쩌고 하는 안내 말이 있기는 한데 다 무시하고 내 나름으로 쓰고 싶은 대로 씁니다. 쓰다 보니 계절 단어는 저절로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의 계절 단어를 통해 의외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겁니다.
예를 들어 ‘눈 온 밤’ 이렇게 하면 벌써 머릿속에 하나의 풍경, 이미지를 그릴 수 있고, 이것으로 이미 많은 이야기를 한 셈이 됩니다. 조용, 쓸쓸, 따뜻 혹은 서늘함 등등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기대했던 대로 시 몇 편 만들기도 전에 재미에 빠져들었습니다.
맨 처음 쓴 시-
까치 날아와
홍시야 외로웠지?
하늘 까치밥
이걸 처음에 한 줄로 써봤습니다.
까치 날아와 / 홍시야 외로웠지? / 하늘 까치밥
산책하다가 감나무에 달랑 하나 남아있는 까치밥을 보고 적은 글입니다. 당연히 읽는 이는 늦가을 혹은 초겨울임을 말 안 해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파란 겨울 하늘에 홀로 둥실 떠 있는 까치밥의 모습을 그리고 싶은데 잘 안 됩니다. 더구나 한 줄로 써보니 맛이 덜 났습니다. 그래서 3행으로 펼치기로 했습니다. 글자 사이에 어떤 공간이(그러니까 푸르게 맑은 겨울 하늘이) 생기는 것 같아 흡족했습니다.
처음엔 1행을 3행에 배치했습니다. 그랬더니 ‘까치 날아와’를 5자로 줄이기 어려웠지요. 그걸 끝에 놓으니 무언가 더 말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1행과 3행을 맞바꿨던 겁니다. 3행은 더 다듬고 싶습니다.
이렇게 단어를 들고 이리저리 맞추거나 깎고 다듬는 과정에서 문장 공부가 됩니다.
눈 무거워서
소나무 꺾이는 밤,
적막의 무게!
어린 시절, 시골 친척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눈이 푸짐하게 온 날 아침 미지근한 구들방에 엎드려 책을 읽다가 들었던 소나무 가지가 따악!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그때 느꼈던 것은 어떤 쓸쓸함이었는데 여기에 그 분위기가 잘 담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50년 넘은 기억을 이렇게 풀어 놓으니 괜히 마음이 편해지네요. 미뤄두었던 오랜 숙제를 한 느낌이랄까.
돌아선 그대
던져보는 그리움,
시린 눈 뭉치
그리움에 관한 시 하나 더.
남겨진 아내
지난봄 떠난 남편
거긴, 추워요?
3행은 두 노인의 사랑을 그린 켄트 하루프(Kent Haruf)의 장편소설 <밤에 우리 영혼은 Our Souls at Night> 마지막 문장에서 가져왔습니다. 소설엔 조금 다르지만, 홀로 남은 아내가 봄에 저세상으로 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보았습니다. 때론 봄추위가 겨울철 추위보다 더 스산합니다.
니체 씨, 니체 씨는 문장 공부를 어떻게 했나요? 니체 씨 문장이 너무 거친 것 같아서 물어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