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기억수퍼 10화

기억수퍼 – 10 죽음을 알리는 방법

by Li Pul


사람이 죽어 초혼을 한 후, 사자밥까지 차린 다음에는 본격적인 장례 준비에 들어간다.

상주들이 정식으로 상복을 입는 것을 성복제라고 하는데 그러기까지 절차가 있다. 먼저 호상(護喪)을 정한다. 장례를 총괄하는 사람이다. 가까운 친족이나 이웃 가운데 장례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정한다. 호상이 정해지면 이때부터 장례 절차를 상의하고, 결정하고, 집행한다.

호상은 대단한 권위를 가졌다. 유학이 성했던 조선시대에는 호상을 누가 맡느냐, 어떤 학문을 한 어떤 학파 사람이 맡느냐에 따라 예법이 달라지고, 그 예법을 가지고 말 그대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다. 왕과 왕비에 대한 장례 예법을 가지고 동인, 서인, 남인 등이 쟁송을 벌인 것은 그것이 곧 권력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다툼이기에 전국의 유학자들이 전부 들고 일어날 정도로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권력 다툼과 달리 한 집안의 장례에 호상이 되는 것도 의미가 컸다. 호상이 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음식 등 모든 것을 주관하는 ‘끗발’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혼인이나 장례, 환갑 등의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 음식인데, 호상은 음식을 차려놓고 내가는 과방(果房)의 전권을 가질 수 있었다. 음식이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환갑을 치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일주일 정도는 그 집에 가서 끼니를 해결하고, 그리하여 환갑 치르고 나면 집안 살림이 거덜 나던 옛 시절에는 과방지기가 보통 끗발이 아니었던 것이다.


호상이 급히 해야 할 일은 부고(訃告)다. 누가 아무 날 아무 시에 죽었다고 일가친척은 물론 평소 교제하던 사람을 확인해서 알리는 것이 부고다. 여기서 꼭 연락할 사람을 누락하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기에 명단 작성에 신중해야 한다.

한편으로 여자들은 뒷방에 따로 모여 수의와 상복을 짓기 시작한다. 수의의 경우 미리 준비하는 경우가 있지만 상복은 그렇지 않다.


부고는 신문이 나온 이후에는 신문 부고난에, 지금은 모임의 총무가 SNS로 간단히 해결하지만 그런 게 없던 시절에는 부고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신속성이 필요했기에 잘 뛰거나 걸음이 날랜 장정을 부고 알리는 사람으로 뽑아 동네방네 때로는 전국으로 내보냈다.

부고장은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 대문 밖에서 받고, 읽은 후에는 대문이나 벽 틈새에 꽂아 두었다. 그래서 어떤 집에 가면 부고장이 든 누런 봉투가 대문 옆에 여럿 꽂혀 있던 것을 볼 수 있었다(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저녁 무렵에 그런 봉투를 보면 얼마나 무섭던지).

줄무늬가 살짝 있는 누런 봉투는 관공서에서 공문을 주고받을 때도 주로 썼는데 이것 또한 사라진 지 오래다.

부고를 받으면, 한마디씩 한다.

“그 인간, 그렇게 그악을 떨더니 결국 죽었군.”

“어허, 그 사람, 아직 한창인데 아깝네.”


막상 내 부고가 갔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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