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덩말에 사는 김춘례 씨(87세).
옆 마을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웬 남자가 손을 냉큼 잡더니 결혼하자고 했습니다. 억지로 잡혔지만 그래도 손을 잡히면 당연히 결혼해야 하는 줄 알고 결혼했습니다. 알고 보니 친구가 그렇게 만들려고 나를 불렀던 겁니다.
시댁은 가난해서 좁쌀밥만 먹었습니다. 좁쌀은 아무리 잘 씻어도 돌이 많았습니다. 밥을 먹다 돌을 씹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밥을 먹을 때마다 긴장이 되어 다 늙은 지금도 변비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열 살짜리 막내 시누는 우리 방에 와서 잤습니다. 남편이 뭐라고 하면 좋으련만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막내 시누는 좁쌀에서 돌도 못 골라낸다고 타박했습니다. 그런 시누에게 아무 말 못했습니다. 시누에게 예쁜 옷을 사주었습니다. 내가 지금껏 입어보지 못한 옷인데 시누는 맘에 안 든다고 마당에 내팽개쳤습니다. 남편은 어려서 그런다고, 다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그게 어떻게 이해가 되는지 평생을 두고 따졌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먼산을 쳐다보았습니다.
시누는 시집가서 엄청 고생했습니다. 아홉이나 되는 시누, 시동생을 시집 장가 보내느라 허리 펴고 산 날이 없습니다. 어쩌다 우리 집에 오면 내가 쌀밥을 고봉으로 퍼주었습니다. 좁쌀밥 해준 게 미안해서입니다. 시누는 게 눈 감추듯 먹고는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시누는 눈물 흘리며 시집살이 어려운 얘기를 했습니다. 다 들어주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병으로 고생했습니다. 시누가 여전히 밉기는 하지만 화병 걸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화병은 나 한 사람으로 됐습니다. 언젠가 내가 사준 옷을 왜 마당에 던졌느냐니까 그런 적 없답니다. 기억에 없답니다. 따지면 뭐합니까. 기억에 없다면 없는 겁니다.
지금은 시누도, 남편도 다 없습니다. 나만 남았습니다. 좁쌀은 쳐다도 안 봅니다. 아이고, 징그러워라. 좁쌀이 아니라 나 자신 말입니다. 내가 살아온 세월 말입니다. 화병은 여전합니다. 자다가도 화병이 도지면 벌떡 일어나 찬물을 들이켭니다. 그래도 시원해지지 않습니다. 시누는 자기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잘도 지워지는 모양인데 나는 그게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서러운 기억만 자꾸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