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는 돌아가신 분의 몸을 보기 좋은 상태로 만드는 일이다. 사람이 죽고 나면 몸이 틀어지거나 눈을 감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수시는 몸을 똑바로 펴주고, 감지 못한 눈을 감기거나 벌어진 입을 다물게 한다. 코, 귀 등 몸의 구멍은 솜으로 막는다. 바람이 들어가면 붓기 때문이다. 때로는 출혈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는 것이다. 횡성에서는 수시를 수세라고 한다.
몸의 구멍을 막은 후 손이나 발이 틀어지지 않게 가지런히 묶는다. 양발의 엄지발가락을 모아 끈으로 묶고, 엄지손가락도 똑같이 한다. 시신을 칠성판에 뉘고 신체도 칠성판과 함께 묶는다. ‘칠성판에 누었다’라는 말은 ‘죽었다’의 의미로 사용된다.
수시를 마치면 흰 천을 시신을 덮어 안방에 모셔두는데 머리는 북쪽을 향하게 한다. 북쪽은 죽음 사람이 가는 곳이다.
수시를 전후해서 사자상(使者床)을 차린다. 초혼을 부를 때 함께 차리기도 하고, 초혼 후에 차리기도 한다. 초혼할 때 차리는 것은 망자와 저승사자가 함께 먹으라는 의미며, 초혼 후에 차리는 것은 저승사자를 위해서이다.
사잣밥은 채반에 밥을 세 접시 담아서 내놓거나, 접시 하나에 밥을 세 번 떠 놓기도 하고, 밥 세 접시, 나물 세 접시 따로 내놓는 등 지역과 집안에 따라 다르다. 사잣밥을 차릴 때 짚신을 놓거나 동전 세 잎을 놓기도 한다. 사잣밥은 문밖에 내놓는데 상여가 나간 후 밥을 뒤집어 놓는다. 사잣밥을 차린 그릇은 버린다.
사자상에는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망자의 황천길을 잘 보살펴달라는 간절함을 담는다. 짚신과 돈은 망자가 저승 갈 때 사용할 신발과 노잣돈이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으므로 사자상에 놓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터벅터벅 힘없이 좁은 길을 걷다가 사자상을 보고는 혼비백산한 적이 있다. 뭔가 쫓아오는 것만 같아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죽어라 도망쳤던 기억. 문밖에 내건 근조등(謹弔燈)도 기억에 생생하다.
캄캄한 밤에 바람에 근조등이 홀로 쓸쓸하게 흔들리는 모습은 또 얼마나 무서운지.
지금이야 많이 생략됐지만, 이런 장례 과정을 보면 ‘자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떤 방법의 자살이던 자살은 이런 엄숙한 과정을 거치려고 해도 그럴 수 없게 만든다. 예나 지금이나 자살은 ‘죽음의 방법’이 아니다.
망자의 몸을 똑바로 펴는 것. 설마 그래야 기억도 똑바로 남기 때문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