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기억수퍼 14화

기억수퍼 – 06 가온 씨는 답을 주지 않는다

by Li Pul



기억수퍼에는 단골이 많다. 뜨거운 커피를 앞에 놓고 멍 때리거나 노트를 펴놓고 끄적인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드나드는 사람이 늘어난다. 대도시에서는 하나도 이상할 일 없지만, 여기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다. 군청 앞길인데도 한낮에도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오일장이 서는 날은 사람이 조금 늘지만 그래도 장터 부근만 잠깐 번잡할 뿐 점심 넘기면 벌써 파장 분위기다. 한강 이남에서 제일 큰 오일장이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옛말이다.


낮에 한산한 길이 해가 떨어지면 더 한산해져 사람 그림자 보기가 어려워진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요즘의 시골이 다 그렇다. 여름이면 해라도 길지. 겨울엔 오후 4시 반만 되어도 캄캄해지고 인적이 끊긴다. 그런 시골에 해가 지면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드는 곳이 있다는 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도 남을 일이다.


가온 씨는 들어주는 사람이다. 누구의 이야기든 귀 기울여준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찾아온 친구들. 성희도 그중의 하나다.


안녕하세요?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눈물이 나서, 제 자신이 한심해서 뺨 한 대 때리고 시작할게요.

저는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근데 그게 안 되더군요. 태어나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서 살았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셨거든요. 언니 오빠가 있어요. 12살 차이가 나는 무뚝뚝한 언니. 7살 차이가 나는, 할아버지와 아빠를 닮은 난폭한 오빠. 우리 집은 남녀평등이 심해요. 언제나 비난이 가득한 집이지요.


저는 초등학교 생활이 그다지 좋지 못했어요. 옥상도 많이 올라갔었고, 많이 울었고, 많이 맞았어요. 언니와 이별도 했고요. 언니는 할아버지 잔소리 탓에 우울증, 빈혈, 갑상샘 기능 저하증에 걸려 힘들어하다 엄마와 살러 집을 나갔어요. 오빠는 군대 갔다가 아빠와 함께 새엄마와 같이 살아요. 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큰아빠와 살거든요. 큰아빠는 장애인이신데 가끔 때리세요. 할아버지는 잔소리가 심하세요. 존나게, 진짜로 2시간은 기본이구요, 남 깎아내리는 걸 아주 잘하는 새끼예요. 할머니는 예수만 바라보는 멍청이구요. 아빠는 저를 호구로 봐요. 돈만주면 다인 아이로 알아요. 저는 사랑이 필요한데 돈으로 때워요. 어떤 날은 제가 너무 힘들고 죽고 싶어서 술담배를 한 적이 있어요. 근데 그걸 들킨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아빠는 말끝마다 “실망시키지 마라” “너 또 나쁜짓하고 다니니? 공부는 하니?” “요즘 뭐해라” 아주 설문조사를 하십니다. 저는 반성하는데 그 새끼는 저를 믿지 않아요. 저는 그냥 필요 없는 년인가 봐요. 저는 죽고 싶어요.


6학년 때 엄마를 처음 만났어요. 어색했어요. 이년이 나를 버렸구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저는 그년을 저주해요. 죽을 때까지. 언니도 오빠도 에미애비도 한심해요. 저는 그냥 다 죽여버리고 자살하는 것도 생각해봤어요. 그 정도로 지금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요.

아빠는 제가 어려서 몰라도 된대요. 저는 공부나 하래요. 그러면서 자기는 새엄마랑 히히호호하며 지내요. 돈만 보내주면 다나 봐요. 개 같은 새끼. 나는 이딴 부모 필요 없는데, 짜증 나요.

그리고 학교에서는요, 제가 술 먹고 담배 피운다고 소문이 났어요.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봐요. 집도, 학교도 저를 거부하네요. 학교가 좋고 행복하면 집이 좇 같고, 학교가 좇 같으면 반대로 집이 행복해지고. 그런데 지금은 둘 다 불행하고 죽고 싶어요.


저는 그냥 평범을 원했는데 너무 많은 걸 바란 걸까요. 나같은 년이 주제도 모르고 나이 어린 게 무슨 그딴 소릴 하냐고 지껄이네요. 제 주변 새끼들은. 하하하하하하. 정말 그냥 맘먹고 죽을까요? 자해를 해도, 피를 뽑아도, 나 자신을 때려도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네요. ㅋㅋㅋㅋ


기억수퍼에는 낮에는 젊은이, 한밤중에는 노인들이 온다. 허리가 굽어서 지팡이를 짚고 오는 사람도 있고 전동차를 타고 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안타깝게’ 청소년도 자주 찾아온다. 2020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3,195명. 이 가운데 9세부터 24세까지 청소년 자살자는 957명이다. 인구 10만 명당 11.1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가온 씨는 답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마주하고 듣기만 한다. 눈물을 흘리면 함께 눈물을 흘려준다. 그래서 친구들이 찾아온다. 늙었건 젊었건, 여자건 남자건 가온 씨는 그들을 친구라 부른다.

나이가 어리다고 기억도 어린 것은 아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기억이 적은 것도 아니다. 기억은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다. 기억은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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