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현읍지(橫城縣邑誌)는 정조 13년(1789년)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 호구는 3,322호에 인구는 10,225명이었다. 1970년대에 횡성 인구가 10만 명을 육박하여 인근의 원주보다 많았으나 지금은 4만8천 명으로 떨어졌다. 사육하는 한우가 4만9천 마리 정도이니 사람보다 소가 더 많다는 말을 듣는다. 정조 임금 이후 350년이 지난 현재 인구가 겨우 4만 명 정도 늘어난 것인데 이것이 우리나라 농촌인구의 현실.
횡성은 고구려때 횡천으로 불리던 지역으로, 일명 어사매(於斯買)라고도 했다. 그 뜻은 자세히 모르는데 지금도 횡성 곳곳의 가게가 ‘어사매’ 간판을 달고 있다(무슨 기억 때문일까?). 횡성에서 나는 쌀 이름도 ‘어사진미’다.
신라때 황천(潢川)으로 개칭되었고, 고려에 이르러 다시 횡천이라 했는데 조선 태종 14년 인근의 홍천과 발음이 비슷하다 하여 읍호가 횡성으로 바뀌었다. 횡성의 옛 이름으로는 화전(花田)도 있는데 언제 그렇게 불렸는지는 기록에 없다. 고려 공양왕 원년(1389년)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조선 태종 13년(1413년)부터 현감을 두었다.
사실, 읍호에 횡(橫)과 같이 썩 좋은 뜻이 아닌 글자를 붙이는 경우는 드물다. 횡은 다 알다시피 ‘가로지르다’ ‘가로로 눕다’ ‘동서’ 이런 뜻인데, 읍 주변에 흐르는 강물도 읍을 가로 질러가지 않는데 왜? 그렇다고 바람이 거센 곳도 아니다.
신라 때 사용한 황천의 황(潢)도 ‘웅덩이’ ‘나루터’의 뜻이 있다. 이곳엔 큰 나루터가 없으니 결국 웅덩이를 나타내는데, 이것도 좋은 읍호는 아니다.
남쪽으로 원주를 가려면 앞고개, 곡교를 경유하고 북쪽으로 홍천을 가려면 서천, 장지고개, 벽옥정, 창봉을 거쳐야 한다. 앞고개에서 창봉까지는 남쪽과 북쪽의 관리들이 왕래하는 대로 즉 큰길이다.
동쪽으로 강릉-삼척을 가려면 향교촌, 자작현, 수유현, 오원, 회현, 안흥, 독현을 경유한다. 서쪽으로 한양을 가려면 서천, 장지고개, 초원, 독현에 이르는 길을 경유하는데 이곳이 바로 한양에서 강릉-평해까지 가는 관동대로이다.
창봉, 초원, 오원, 안흥은 참로(站路)인데, 참로는 교통의 요지에 역을 두어 관리의 숙박과 역마를 제공하던 곳을 말한다. 그러니까 참로라는 것은 나라의 중요도로라고 하겠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적으로 509개소에 역참이 설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502개소에 역참을 두었다.
위에 언급한 도로를 간단히 정리하면 현재 국도 6호선과 국도 42호선을 가리킨다. 국도 6호선은 인천 중구에서 시작하여 광화문 사거리를 거쳐 강릉시 주문진읍까지 이르는, 총연장 276.9Km의 길이다.
길이라고 다 같은 길이 아니다.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이런 식으로 도로에 급수가 있듯이 길에는 ‘격’도 있다. 비록 고속도로가 아니더라도 나라의 중요한 도로는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게 만들었다(이게 몇 안 된다). 양평, 횡성을 지나고 황재, 문재를 넘는 꼬부랑 이차선 도로이지만 그 끝 한 자락은 광화문 사거리와 연결되어 있는, 격 있는 도로인 것이다.
국도 42호선은 총연장 336.1Km로 역시 인천 중구에서 시작하여 동해시까지 이어진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강릉/평해를 연결하던 대표적인 옛길 ‘관동대로’ 또는 ‘평해대로’는 현재 일부는 6호선, 또 일부는 42호선으로 남아있으나 옛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사는 곳이 마침 역참이 있던 오원이다. 이곳에서 전재를 넘어가면 안흥이고, 안흥에서 문재를 넘으면 바로 평창 계촌이다. 지난 8월 말 계촌 클래식 교실에서 임윤찬을 초청하여 야외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는데 깡촌에 전국에서 5천 명이 모여들었다. 계촌 앞길도 관동대로에 속한다. 관동대로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길 위에 선 것은 아닌지.
가끔 복사판 ‘대동지지’를 들고 관동대로를 찾아 걷는 옛길 탐사객을 본다. 오원에 이르면 새로 난 차도와 뒤엉켜 옛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다른 곳도 사정이 비슷하다).
어느 옛길 도보팀이 오원에서 전재 정상으로 가는 도중 길을 잃고 헤매다가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남의 집 마당으로 들어섰단다. 주인이 나와서 못마땅한 눈으로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겠다. 여차저차 해서 옛길을 걷노라고 하니까 주인이 하는 말-.
“이거 걸으면 누가 돈을 줍니까?”
“아니요. 그냥 취미로…”
“돈 안 되면 걷지 마슈!”
서울 살 때 혼자 운영하는 ‘출판사 옛길’을 차렸다. 여태 책 몇 권 내지 못했지만 지금도 좋은 책 내려는 소망이 있다. 횡성에 내려와 간판부터 떡 세워놓고 보니 여기가 바로 옛길. 참 묘한 인연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