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과 스피치의 교집합은?
사실 조건부 박사 입학이긴 해도,
펀딩이 보장되는 박사과정으로의 전환을 100% 확신할 수 없었기에, 석사과정에 들어오자마자, 최대한 빨리 펀딩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비지원을 받는 조교가 되기 위해 교수들에게 부단히 어필을 했다.
그러던 중, 내가 다니던 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대학교 전체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 말하기 (public speaking) 수업을 가르치는 여러 명의 조교(teaching assistants)를 뽑는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 대다수의 대학교는 공적 말하기 (public speaking) 수업이, 전공과 관계없이 졸업을 하기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필수과목’이다.
내가 속한 커뮤니케이션 학과가 전체 대학교 학부생을 대상으로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항상 매 학기마다 공적 말하기 수업이 열렸고,
500명이 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론 위주의 수업과 더불어,
15-18명 남짓의 소규모 랩(연습 및 발표를 전담하는) 수업이 이루어졌는데, 바로 이 랩 수업을 대학원생 조교(Teaching Assistant)들이 가르쳤다.
바로 그 수업의 조교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 펀딩이 너무나 시급했던 터라, 상대적으로 기회가 열려있었던 이 수업의 조교가 너무나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학부시절 1년간의 미국 교환학생 경험과 미국계 회사에서 이메일로 주고받았던 영어가 전부였던 나는, 영어 스피킹에 자신이 없었다.
스피치는 당연히 미국인 대학원생들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용기를 내어 담당교수에게 상담을 했더니, 교수가 “Public speaking is not a matter of speaking English. You can teach public speaking once you know what to do.”라며 지원을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Public Speaking을 가르치는 조교로 신청을 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뽑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대학교에서 유학생들에게 실시하는 스피킹 테스트에 통과를 해야 했고, public speaking을 가르치기 위한 수업을 한 학기 동안 들어서 패스를 해야 했다.
스피킹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게 된 나는, 비로소 공적 말하기를 A-Z까지 상세하게 배우게 되었다.
‘서론-본론-결론’등의 논리적 구조는 물론 ‘말의 속도,’ 음의 높낮이’와 같은 발화적 표현, ‘아이콘택트’, ’제스쳐’ 등의 비언어적 표현까지..
회사를 다니는 동안 ‘분석’을 하는 것이 익숙했던 나는, 이 수업시간에 교수가 예시로 보여주는 스피치 동영상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 영어이고 대부분 빨리 말해서 한 번에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반복해서 보다 보니 여러 가지 요소에서, 내가 지적할(?)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 학기 동안 그 수업을 듣는 과정에서, 담당 교수는 학생들에게 짝을 지어서 각자 스피치를 준비해오게 했고, 서로가 각자 자기 파트너의 스피치에 대한 평가를 하는 숙제가 있었다.
나는 당시 내 짝이 되었던 Abby가 어떻게 발표를 시작했는지,
어느 부분에서 관객의 관심을 끌었는지, 제스처는 효과적이었는지, 말의 속도는 적당했는지 등을 자세히 분석해서 제출했고,
나의 그 리포트에 담당 교수가 처음으로
“100/100 Superb!”라고 하시면서 만점을 주었다.
‘아, 내가 비록 말을 잘하지 못해도, 나는 스피치에서 중요한 요소를 발견하고 평가하고, 가르칠 수 있겠구나.” 하는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미국 학부생을 가르치는 공적 말하기 수업의 강사가 되었고, 그 무렵 박사과정으로 전환도 이루어져, 전액 장학금 (수업료 + 생활비)를 받는 박사 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미국인들에게 스피치를 가르치고, 평가하는 동양인 강사로 수년간 경험을 쌓았다.
졸업논문을 쓰면서 잡마켓에 나온 나는, 내 연구분야인 헬스커뮤니케이션 관련 연구교수직을 포함하여, 총 65군데를 지원했다. 일단 어디라도 되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학교 이름도, 지역도 거의 안 보고 반년을 넘게 지원을 했다.
지원을 한 65군데 중 총 10개의 학교와 인터뷰를 했지만, 최종단계에 까지 가는 학교는 없었다.
이듬해로 지원하는 것을 넘겨야 하는 찰나에, 거의 마지막 시기인 5월에 지원했던 한 학교와 전화 인터뷰 및 캠퍼스 인터뷰를 하고, 최종적으로 오퍼를 받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지금 내가 속해있는 학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학교는 내가 지원한 65군데 가운데 가장 랭킹이 높은 - 올해 기준 전미 34위- 인 미국에서도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로체스터 대학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뽑힌 이유는, 컨설턴트로서의 직무연관성과 대학원에서 가르쳤던 public speaking 티칭 경험이 이 학교에서 원하는 핏에 딱 맞았다고 한다.
나에게 번아웃을 가져다주었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의 나의 경험이, 해외취업의 불안한 기로에 있었던 유학생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준 것이다.
그렇게 번아웃 직장인은 미국 명문대학교 경영대에서 스피치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고, 벌써 7년차 교수가 되었다.
어렸을 때 저는
친척들이 집에 오기만 해도
엄마 치마 뒤에 숨는,
부끄럼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 후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사회성이 발달이 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내향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흔히들, '스피치'라고 하면
사람들 많은 곳에서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고,
목소리가 큰 '외향성'을 가진 사람이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지난 10년 동안 가르치면서 경험한
진짜 '스피치'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집니다.
바로 그 이유로,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제가 겪었던 20대 시절의 방황과 좌절,
그리고 30대 시절의 도전과 희망이
지금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듯이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될 수 있습니다.
스피치는 '나의 우월함을 뽐내는 도구'가 아닙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공감하고 연결하기 위해
세상에 꺼내는 '용기의 과정'입니다.
번아웃 직장인 혹은 내향성 유학생의 성장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소통을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