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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교수의 인터랙션 Sep 14. 2022

기억에 남는 한 학생 그리고 나의 역할

때로는 나쁜 일이 좋은 사람에게 생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한 학기에 최소 한 명은 마음에 남는 학생이 생긴다. 이 친구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인도에서 우리 학교 석사과정으로 유학을 온 학생인데, 내 수업 초반에 자꾸 내 수업에서 얼굴을 안 보이는 것이다.

작년 봄학기만 해도, 대면 강의와 온라인 강의를 동시에 진행하였던 하이브리드 수업을 했었던 학기였는데, 학기 초반 대부분을 강의실에 오지 못한 채,

부스스한 모습으로 무기력하게 느지막이 줌에 들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줌을 통해 보인 그 학생의 어두운 표정이 마음에 걸려, 내가 먼저 이메일을 보냈다.

“Is everything okay with you? Is there anything I can help you?”


그랬더니, 학생이 면담을 신청했다.

Zoom을 통해 만났던 그 학생은 본인의 학부 전공이 너무 달라서, 교과과정을 따라오는 것이 너무 힘에 부친다고 했다.

(내 수업 말고) 다른 프로그래밍 수업들에서 숙제도 많고, 퀴즈도 너무 많아서 밤을 새워도 다 못 끝내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수업에 제대로 집중을 못해서 너무 죄송하다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학생의 불안하고 절망적인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어렵게 온 유학이었을 텐데, 얼마나 자괴감이 들고 제대로 못 따라가는 본인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바로 작년에 내 수업을 듣고 졸업을 하면서 뉴욕시티에 있는 큰 컨설팅 회사에 취업을 앞둔 졸업생 한 명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이런 학생이 있는데, 도와줄 수 있냐고. 마침 그 학생 역시 인도에서 유학을 온 학생이라 뭔가 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

그 졸업생은 바로 내 학생을 직접 만났고, 본인이 경험했던 것들을 나누면서 오랫동안 상담을 해주었다고 했다.

본인도 학과 수업 따라가는데 힘들었고, 하지만 결국은 모두 이겨냈고, 그 과정을 통해 미국에서 취업까지 되었다고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둘은 관계가 지속되어 꾸준히 서로 연락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멘토와 멘티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힘들어했던 내 학생은,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감을 천천히 이겨내면서, 비록 최고의 성적은 아니지만 무사히 내 수업과 우리 학교 석사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수업을 하던 날, 그 학생이 조용히 나에게 다가왔다.

“I’ve never met a person who sincerely wanted to help and cared about me in the U.S.”

그리고는 내 발등에 입을 맞추고, 손을 갖다 대었다. 그것이 인도에서는 ‘존경’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리고 그 학생은 올해 여름, 졸업과 함께 여러 번의 도전 끝에, 본인이 그토록 원하는 뉴욕시티 한복판에 있는 컨설팅 회사에 입사를 하였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의 조언을 구하고, 수정에 수정을 반복하는 과정을 함께 했다.

그리고 결국 가장 원하던 회사에 최종 합격이 되어, 나에게 서프라이즈 전화를 하면서 합격소식을 알려주던 그 기쁨에 찬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


‘Hi Professor, how are you?’

최근에 바로 그 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뉴욕시티 한복판에서 컨설턴트로서 열심히 일할 학생이 반갑게 보내는 안부 문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최근에 회사에서 대규모 정리해고를 했는데 다른 동기들과 더불어 47명이 해고가 되었고, 본인이 그중에 포함이 되었다고..

그래서 자기가 아는 사람들에게 모두 연락해서 도움을 받고자 하는 문자였다.

더군다나 외국인 신분이라 취업비자가 박탈되어 미국에 90일밖에 있을  없으며,  안에 채용이 안되면 자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문자에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순간 떠오르지 않았다. 차마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내 일이라면 당연히 심장이 떨릴 정도로 속상하고 억울할 상황일 테니 그 친구도 당연히 괜찮지 않을 거고, 잘 될 거라고 걱정 말라고 말하기에는, 잘 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일단 내가 도와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얕은 인맥을 동원하여 링크드인을 통해 recruiter에게 난생처음으로 개인적으로 연락도 취했다.

뽑고자 하는 조건에 맞는다면, 한번 이 친구를 진지하게 고려해달라고 말이다.


그 학생의 노력과 성실성을 믿지만, 때로는 안 좋은 일들이 좋은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내가 경험했고, 그런 사람들을 보아왔다.

살아가면서 그런 일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때마다 뭔가 맥이 탁-하고 풀리지만, 마냥 허무하게 터덜터덜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도대체 저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시는 겁니까? 하고 하늘에 물으며 이 감정이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믿는 수밖에-


하지만, 역시나 그 학생에게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고생했다고 진하게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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