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교수의 인터랙션 Aug 27. 2022

나는 네가 앞으로 거쳐갈 모든 일들을 알고 있다.

미국 대학원에서 겪을 학생들의 감정 주기 (emotional cycle)


미국은 어느덧 새로운 academic year의 시작인 가을학기가 돌아왔다. 내가 있는 곳도 개강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수업자료도 재정비하고 Blackboard(Learning Management System)도 새롭게 업데이트하면서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7년째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겪게 되는 감정 주기(emotional cycle)를 알게 되었다.

크게 나누어보면 총 4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단계는, 흥분감과 두려움이다.

내가 있는 대학과 경영대학교의 특성상, 내가 가르치는 90% 이상의 학생들이 해외에서 오는 유학생들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떨어져 사는 것 자체가 처음인 케이스가 거의 대부분이다. 개강을 하고, 처음 몇 주 동안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대한 흥분감과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몰라 두려워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눈빛이 학생들에게서 감지된다.


두 번째 단계는, 피로감과 불만이다.

이제 적응기가 끝나고 나면, 현실의 문제점과 맞닥뜨리는 시기를 맞이한다.

학과 수업은 쉽지 않기에 (R, Python, Tableau 같은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단기간에 여러 개를 배운다), 특히 학부에서 다른 전공을 하고 온 학생들을 더욱더 학과 공부를 따라잡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어한다. 밤샘을 하며, 공부를 하고 퀴즈를 풀고, 테스트를 준비하기에 학생들의 눈빛은 금방 퀭해지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벤트 등에 무관심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학과 커리큘럼에 불만을 가지고 나에게 하소연하는 학생들이 생기면서, 수업 과제를 제때 제출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발생한다.


세 번째 단계는, 불안감이다.

첫 학기가 끝나면, 학생들은 본격적으로 job search를 시작하고 진로탐색의 시기에 들어간다.

유학생 신분으로서, 비자 문제로 미국에서 잡을 찾는 것이 쉽지 않기에 (트럼프 정부 이후에 외국인을 고용하는 비자를 발급해주는 회사들이 많이 줄은 것은 사실이다), 학생들은 어쩌면 다시 모국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취업이 되기 시작하는 주위 친구들을 보면서 조급한 마음 역시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이 무렵이다. 이 시기의 학생들은 수업에 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수업시간에도 노트북만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내 수업이 지루한가?”라고만 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본인들이 불안하기에 수업에도 집중을 못하고, 아마 취업사이트를 전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단계는, 전환기 그리고 감사함이다.

일 년 동안 프로그램 과정이 끝나고 5월이 되면, 바야흐로 졸업의 시즌이 온다. 이때쯤이면,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정규직이나 인턴십 등 졸업 이후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수업을 들으면서 겪었던 만성 수면부족의 시기가 지났기에, 학생들의 표정은 대부분 한결 나아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 진로가 결정되기 않았거나 자신이 기대했던 결과(미국에서의 정규직 기회)가 아닌 경우,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생겨나 스스로 움츠러드는 상황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취업이 되고 성취감을 획득한 학생들은 교수들에게도 먼저 나서서 연락을 하고, 고마움을 전하며 만나자고 한다. 하지만, 내가 마음이 쓰이는 학생들은 바로 움츠러들었을 절반의 학생들이다. 얼마나 외롭고, 서운하고, 막막할까- 하는 마음이 든다. 분명 일 년 전에는 모두가 같은 불안감과 열정으로 시작했을 텐데 그들이 느끼기에는 아마 실패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생들이 대학원에서 겪는 단계별 감정 주기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 ‘인생의 출발선 있다는 것이다. 타인과 비교했을 , 앞서 나갔다고 스스로 뿌듯해하면서 일을 시작할  있지만, 실제로 직장인으로 살면서 어떠한 인생의 변수를 맞닥뜨리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개월 먼저 시작했다고, 결코 승승장구하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개월 혹은 수년을 뒤늦게 시작했다 하더라도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치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의 입장에서 너무나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들이 겪을 감정들을 모두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것이다.

모든 감정은 각각의 가치가 있으며,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감정을 겪는 자만이 미래에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때로는 좌절할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내가 고민하고, 좌절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했지만 이제는 나의 학생들에게 바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응원을 해주는 존재로 성장하여, 그 시기에 겪었던 모든 일들과 모든 감정에 대해 감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전 06화 기억에 남는 한 학생 그리고 나의 역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