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직은 살만한 공간>인 이유
지난주에 내가 가르치는 <Professional Communication>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첫 번째 발표가 끝이 났다.
경영대에서 스피치 수업을 하는 것이기에, 첫 번째 발표 주제는 “Why Hire Me?”이다.
자신이 졸업을 하고 가고자 하는 회사와 포지션을 정하고, LinkedIn이나 Glassdoor와 같은 취업정보 사이트에서 그 회사와 포지션에 대해서 리서치를 한 후, 왜 그 회사가 본인을 꼭 뽑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5분 정도 발표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수업에서 학생들의 발표를 아이패드로 녹화, 그것을 GoReact라는 플랫폼에 올려서
이후에 녹화된 발표를 보면서 학생들에게 보다 자세하고 객관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으며,
학생들도 자기의 발표에 대해서 학우들의 피드백을 받고, 본인 스스로도 자기 비디오를 보고 평가를 하는 과정을 거친다.
학생들은 각자 본인의 과거 인턴십 경력과 프로젝트 경험 등을 끄집어내어,
한껏 자신감 있는 목소리와 제스처로 자신이 왜 그 회사에 꼭 들어가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을 했다.
거의 대부분이 학부를 졸업하면서 바로 우리 학교 석사과정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소위 스펙(?)을 만드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도
이런저런 인턴십과 공모전 등 이미 학부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성과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들이 대견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한편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까지 어린 학생들이 이토록 절실하게 어필을 해야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되는 시대가 되었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게 열명 남짓한 소규모 단위로 발표를 진행하였는데,
모두가 열심히 준비해서 자신감 있는 발표를 하는 가운데,
한 남학생이 유독 긴장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 앞서 발표한 학생이 너무나 말을 수려하게 잘해서 그러는 건가 싶었는데,
눈앞의 학우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바닥을 응시하면서,
목소리도 중얼거리는 정도라 가까이에서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듯, 말을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것이 힘들어 보일 정도였다.
주어진 5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서둘러 발표를 마친 그 학생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연습을 제대로 못한 것인 걸까?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그런 걸까?
모든 발표 순서가 끝나고 학생들이 떠난 후, 그 친구가 나에게 다가왔다.
본인이 집에서 혼자 준비했을 때는 제대로 했는데,
막상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려고 하니, 제대로 발표를 못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본인이 학창 시절에 bully(집단 따돌림)을 당했었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아.. 대인기피증이나 사람 자체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눈도 못 마주치고,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었다.
일단은 약속이니, 학우들 앞에서 발표한 것은 플랫폼에 올리고,
집에서 혼자 발표를 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나에게만 보내달라고 했다.
그것을 내가 참고해서 본 후, 성적에 적절하게 감안을 해서 반영하겠다고 했다.
본인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데에 실망을 많이 한 눈치였지만,
내가 기회를 더 준다고 하니 고맙다고 하면서 돌아갔다.
모든 학생들의 발표가 끝난 후, 나는 아이패드로 촬영한 영상들을 플랫폼에 올리고,
학생들에게 본인이 발표한 영상을 보고, 잘된 점과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서 스스로 reflection을 하고,
본인 이외에도 두 명의 학우들에게 진심 어린 피드백을 할 것을 부탁했다.
무조건 잘했다고 하는 입에 바른(?) 이야기가 아니라,
그 발표의 장점과 보완할 부분에 대한 솔직한 피드백이
상대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된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게 주말까지 학생들의 peer-review와 self-reflection이 끝나고,
비로소 내가 학생들 발표 녹화본을 보면서 피드백을 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 발표를 일일이 보면서 피드백을 주던 중, 바로 그 남학생의 발표 녹화본이 담긴 링크를 클릭하였다.
혹시 같은 반 학생들 가운데 아무도 글을 남기지 않았으면 어쩌지?
아님 누군가가 냉정하게 발표를 제대로 못했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염려되는 마음을 가지면서 말이다.
“OOO야, 끝까지 용기 내서 발표를 마무리해줘서 고마워.
보아하니 네가 많이 떨렸던 것 같네. 그런데 괜찮아! 우리 모두 다 그랬어!
나도 사실 준비하면서 많이 떨렸는데 내가 노력했던 방법들을 알려줄게. 첫 번째는…. “
이런 식으로 공감을 하고,
자신의 경험을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피드백을 주는 여러 명의 학우들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아.. 많은 친구들이 이 친구를 진심으로 응원하는구나!
학급 친구들의 코멘트만 보면, 그 학생은 그렇게 발표를 망치지 않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 학생은 나에게 따로 영상을 보내지 않았다.)
학우들의 피드백에 댓글을 단 그 학생의 댓글을 보더라도 더 이상 그렇게 실망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우리가 맺는 다양한 관계에서 안타깝게도 상처를 받아 인생에서 트라우마처럼 남게 될 수도 있다.
특히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 있는 우리 아이들, 학생들이 학창 시절에 겪는 안타까운 일들이 그들의 남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인생에서 있었다면,
당신이 잘 되길 바라고, 응원하는 사람들 역시 주변에 많이 있을 것이다.
마치 실패했다고 낙담하고 있는 그 학생에게 용기를 주고, 자신을 경험담을 통해 도우려고 했던 다른 학생들처럼 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마라톤을 완주하기를,
실수를 해서 넘어져도 그것을 딛고 일어나길 바라고 있다.
함께 응원하고 다 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직은 살만한 공간>이라고 믿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