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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Aug 02. 2018

혹서기의 독서

러시안 소울


소장 욕심만 많아 사놓고는 결국 읽어내는데 실패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요즘에는 더욱 심해져서 '아, 나는 본래 책 읽기를 싫어하는구나'라는 성찰에 이를 정도였는데, 정말 오랜만에 몰입해서 보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쉽게 읽히고, 읽고 나면 러시아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감동이 있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일단 러시아라는 단어만으로 뭔가 시원함이 느껴집니다. 실제 그 속에서 겨울을 많이 다루고 있기도 해서 더욱 그러합니다.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

M.T. 앤더슨 저/장호연 역



소비에트의 독재자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에서 나치 독일 히틀러의 기습으로 발발한 독소전쟁(1941~1945)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세계적인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한 소비에트 인민들, 특히 레닌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이 두 돌+I의 하모니로 인해 겪은 참혹한 삶, 그럼에도 잔존하는 희망에 대한 기록물입니다. 이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이 탄생하는 여정이기도 한데요, 쇼스타코비치를 중심축으로 한 시대를 다룬 책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잘 몰라도 그의 왈츠 제2번은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Д. Шостакович - Вальс №2

https://youtu.be/mmCnQDUSO4I


 스탈린의 대규모 숙청이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포위전(봉쇄) 등은 그 단어만 알고 자세한 내용은 잘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접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스탈린은 별명이 인간백정(Палач)입니다. 사람들을 얼마나 죽여댔는지 스탈린 치하에서 최대 400만 명 이상이 숙청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똑똑하면 똑똑하다고, 멍청하면 멍청하다고 제멋대로 숙청하는 식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시달렸던지 독소전쟁 초기에는 되려 독일의 침략을 반기는 부류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쪽도 인종청소를 하러 온 것이지요. 블라디미르 푸틴의 고향인 레닌그라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완벽히 포위당했습니다. 도시로의 식량 및 물자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레닌그라드 시민은 하루 250g~500g(여기에도 차등이 존재하네요)의 빵을 배급받으며 900여 일을 버텨야 했습니다. 250만의 도시에서 900일 동안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포격으로 사망하거나 아사합니다.

 그 속에서 러시아의 가장 고매한 도시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은 추악한 짐승이 되어버립니다. 동시에 가장 고결한 인간으로 거듭납니다. 한 도시 내에 기아를 견디다 못해 인육을 먹는 일과 시(詩)와 음악에서 위안을 찾는 일이 900일 동안 공존합니다. 도시가 봉쇄된 중에도 극장에서는 공연이 이어지고 책방은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이 알 수 없는 나라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애정 가득) 이 시기가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7번과 동의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대작의 탄생과 미국 초연에 이르는 여정, 이를 둘러싼 이야기들도 스펙타클합니다. 이미 세계적인 작곡가였던 쇼스타코비치와 그 가족은 레닌그라드에 갇혀 있다가 정부의 도움으로 동쪽으로 탈출하는데요. 뭔가 씁쓸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와중에도 공산당 고위급들은 매우 풍요로운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Д. Шостакович - Симфония №7

https://youtu.be/_z8TZjcqYhY


무엇보다도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고 쉽게 읽히는 것은 장호연 번역가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모르고 읽다가 대체 번역가가 누군지 다시 챙겨봤을 정도입니다. 특히나 최근에 번역투의 문체가 읽어내기 힘들어 포기한 책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번역가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책이 끝나는 것이 아까워서 마지막 부분을 아직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집에 가서 에어컨 틀어놓고 읽어야겠습니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이 무더위도 한 풀 꺾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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