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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Aug 11. 2018

남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Thanks for Sharing


 6월 중순부터 6주간, 매주 목요일. 문화재단에서 시 쓰기 수업을 들었다. 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생업을 마치고 모인 저녁시간 정도의 가벼운 모임이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다양한 '쓰는 사람'을 실제로 만난다는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실생활에서 누군가와 '쓰기'라는 이 은밀한 취미를 공유하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라는 옷감의 속을 뒤집어 보이며 돋보기까지 쥐어주는 일에 가깝다. 안감은 싸구려에 바느질은 엉망이고 여기저기 실밥이 너덜너덜하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내 머릿속이 그렇게 엉망이라는 사실은 비밀인 셈이다.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이 매주 다른 주제의 시를 소개해주고, 그 주제를 놓고 각자가 써 온 시를 낭독하고, 함께 감상을 나누는 수업이었다. 시를 잘 쓰기 위한 이론적, 기술 배움이 있을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써온 '배울 것 없는' 시를 한 시간이나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던 것이다. 이미 '검증'된 선생님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뭔가 노하우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전수해주며 유명 작가의 작품을 더 많이 감상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랐는데 금방 실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수업이 한 주 한 주 진행될수록 내가 선생님의 말보다 다른 사람들의 '배울 것 없는' 시 낭독을 더 기다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저명한 작품들보다도 그 배울 것 없는 시에서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대화'라는 것의 모양을 가만히 보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닌 때가 많다.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쏟아내며 그저 서로에게 해소해버리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 속에서 공감이나 위로를 기대하기보다는 그냥 이렇게 해소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즐거운 대화였다며 다시 공허한 마음으로 헤어지곤 하는 것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 시 수업을 찾던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은 서로 사적인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 수업을 통해 '대화'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시'라는 형태를 빌려 서툴게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었고 쓰기를 통해서만 겨우 발현되는 것들이었다. 그런 내밀한 이야기 속에서 공감의 영역을 발견해가는 것이 놀라웠고 그것이 힐링이 되었다. 사람들의 내면은 무척이나 닮아있었고, 나에게만 삶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 'Thanks for Sharing'이 생각났다. 섹스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모임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영화인데 이처럼 미국 영화를 보다 보면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위안을 얻는 치유 프로그램이 자주 등장한다. 한 사람의 '자기고백'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Thank you for sharing your story"라 말하는데, 꺼내기 힘든 이야기들을 기꺼이 나누어 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다.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고마울 수는 있어도 나의 이야기를 공유해줬다고 고마울 이유는 뭘까. 이번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그런 모임이 어떤 방식으로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번 시 수업이 그런 치유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내 글을 쓰고 나의 이야기를 해서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찾고 그런 진짜 공감이 서로에게 위로로 전해지는 시간. 한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공유해준다는 것은 분명 감사를 표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Thanks for Sharing. 비로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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