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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Mar 18. 2019

오 나의 아파트

심약한 직장인의 아파트 아이쇼핑

  요즘 내가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는데, 매일 일기를 쓴다라거나 한 챕터라도 책은 꼭 읽는다는 둥의 정신적인 활동이면 좋겠지만 의외로 내가 꾸준함을 보이는 일은 네이버나 다음의 부동산 메뉴를 이용해 그날의 아파트 시세를 확인하는, 지극히 속물적인 일이다. 포털사이트 부동산 메뉴의 '매물' 카테고리에서는 아파트뿐 아니라 주택, 상가 등 각종 부동산이, 어떤 거래형태로, 어떤 가격에 나와 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 물건이 몇 층에 있고, 내부 구조는 어떠하며, 남향인지 남동향인지, 최근에 동일 평형이 얼마에 거래되었는지, 최근 몇 년간의 시세 변화는 어떠했는지 등이 확인이 가능하다. 나는 부도심 이상의 편의시설을 갖춘 지역 내에서 지하철 역까지 도보로 최대 10분의 거리에 있는 25평 내외의, 방 세 칸에 화장실 두 칸이 딸린 아파트의 시세를 매일 확인하고 있다. 최근 2년 정도, '아이쇼핑'을 하듯 정말 매일매일.

  사실 이것은 '집에 화장실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소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치스러운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우리 집 화장실은 거실 겸 주방에 붙어 있다. 더 명쾌하게는 식탁에서 두어 걸음 떨어져 있는데, 밥을 먹다 한 사람에게 긴박한 용무가 생기면 남은 사람의 식사는 고상함을 잃고 인간의 본능을 공감각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것은 사랑으로 다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주거지의 마련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겨우 충족된 것이라면, 이제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한 단계 높은 욕구가 발현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여기가 서울이 아니기에 감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화장실만 한 칸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보니까 방 두 칸에 화장실도 두 칸 있는 구조의 집은 아예 없다.



그러다 알게 된, 나만 몰랐던 것들.


지하철 역 근처에 위치한, 연식 15년 이내의, 세대수가 많은 대단지의 브랜드 아파트, 거기에 초등학교를 단지 내에 끼고 있는 일명 '초품아' 아파트의 34평형 인기가 가장 높다.

  나는 자녀가 없으니 초등학교도 필요 없고 사람 많은 대단지는 싫은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인기는 환금성이다. 언제든지 내가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고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샀다면 다시 쉽게 팔고 나갈 수 있고, 전세라면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아 속 끓이며 주인과 싸워야 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지하철 역세권(도보 5분 이내)에 있는 새 아파트라면 다른 요소가 조금 떨어져도 모든 단점을 커버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서울로 연결되는 지하철이 있는 곳은 그 지역 내의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높은 시세를 형성한다. 관공서나 기업체가 많아 꾸준한 직장인 수요가 있고, 초등학교가 가깝고, 시장이나 마트, 병원이 가까워 살기 편리하고, 근처에 작더라도 공원이 있는 곳은 정말 모두가 원하는 곳이다. 매매가나 전세가가 잘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거래가 활발하다.

  층간소음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1층이나 최상층은 항상 고정 수요가 있다. 최상층은 단열에 취약하다지만 소음에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덥고 추운 게 낫고 최근 지어진 아파트들은 단열 문제가 거의 없다. 25평 이상 34평 이하의 아파트에는 무조건 층간소음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이 많다. 더 작은 평형에는 아직 아기가 없는 신혼부부가 살거나 자녀를 출가시킨 부부가 살림을 줄여 옮겨오는 경우가 많고 더 큰 평수에는 부자인 노부부만 살거나 자녀들이 장성하여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반면 주변에 공장이 있거나, 유흥가(술집이나 모텔)가 많으면 거주지로서의 인기가 어김없이 떨어진다.



갑자기 너무 올랐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아파트 시세는 16년 말을 전후로 해서 갑자기 급등했고 18년에 최고치를 찍었다. 가장 선호도가 높은 34평형을 기준으로 보면 16년 대비 15% 이상 상승한 것 같다. 4억짜리 아파트가 4억 6천이 되는 것이다. 분양가도 마찬가지다. 17년부터 분양가가 급상승했다. 천만 원에 분양을 해놨더니 그 분양권이 상승장을 타고 시장에서 천이백에 거래가 되기 시작한다. 그걸 본 건설사들은 천이백에 분양을 하고 또 그것이 시장에서 천오백에 거래되면서 다음 분양가는 천오백으로 점점 올라가는 식이다. 장기간의 학습효과로 분양권이 시세차익을 남기고 거래되는 것을 본 사람들은 높은 분양가에도 서슴없이 청약을 한다. 높은 분양가로 분양에 성공하면 그 주변의 기존 아파트(구축)의 매매가나 전세가도 같이 오른다.

   개인적으로 17년부터의 상승분은 거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거품이라고 해서 꼭 꺼지는 것은 아닌 게 문제다. 최근의 규제 폭탄으로 다시 떨어진다고 하는 곳은 올라도 너무 오른 서울 이야기고 여기는 아직 고점에서 정체된 상태, 즉 매물의 호가는 그대로인데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다.  



아파트는 돈 있는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더라.

  나는 한 푼 두 푼 모아 전액 현금을 주고 중고차를 구매했다. 흙수저에게 빚이란 인생을 말아먹고 가정을 파탄 나게 하는 불행의 씨앗이다. 풍비박산이 난다. 먼저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집을 사야만 한다는, 한마디로 불가능한 꿈을 꾸는 이 흙수저는 그 언젠가 돈이 다 모이면 사게 될 아파트를 계속 아이쇼핑 중인 것이다. 그런데 보니까 자기 자본 100%로 분양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더라. 고분양가의 아파트를 청약하는 사람 중에는 분양가의 10%, 즉 계약금만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것마저도 없어 대출을 내기도 한다. 여기서 대출도 물론 능력이다. 계약금을 낸 후 중도금은 집단대출로 충당하고 입주시기에는 전세입자를 들여 그 전세금으로 중도금 대출을 상환하고 마지막 잔금을 어찌어찌 맞춘다. 입주는 하고 싶은데 자금 여력이 없다면 담보대출로 전환하여 은행에 저당을 잡히고 입주한다. 그 사이 분양가 대비 시세가 많이 올랐다면 그냥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기도 한다. 어쨌든 대부분은 은행의 돈이나 남의 돈을 빌어 '내 집'에 살고 있고, 부동산 시장이 호황인 경우 이러한 무모한 도전은 경제적인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이럴 때도 유리하다. 금수저는 돈만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시장을 밝게 보는 사람들은 베팅하고 성공한다.(물론 실패도 하겠지만) 그런데 나를 포함한 타고난 비관론자들은 앞으로의 경제사정에 대해서도 낙관하는 법이 없다. 경제 걱정도 모자라 집안에 어떤 우환이 닥쳐 급전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끌어다 가슴 위에 돌덩이처럼 안고 산다. 거기다 빚 트라우마까지 있다면?! 그냥 나처럼 안 모이는 돈을 모으며 집값이 하염없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아 그때 살걸! 하면서.




난 그냥 화장실이 하나 더 필요했을 뿐인데.


  아이쇼핑을 한 지 2년이 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화장실이 하나 딸린 집에 살고 있다. 즉 나는 겁이 많아 빚을 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내가 모은 돈과 내가 살고 싶은 집의 가격차는 좁혀지기는 커녕 더 벌어지기만 했다. 떨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사이 눈 딱 감고 두 번 새 아파트에 청약도 넣었는데 당첨이 될까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낙첨되고 오히려 안도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최종적으로 더 큰 집으로 이사하기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2년 고민했으면 되었다. 식사시간에는 최대한 화장실을 가지 않고, 화장실에 갈 때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 소리를 묻고 환풍기를 돌려 냄새를 빼고. 그렇게 조금 불편하게 계속 살기로 했다. 미니멀리스트를 표방하면서 매일 아파트 시세를 확인하는 삶이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살 수도 없는 아파트 가격을 훤히 꿰고 있는 스스로가 우습기도 하다. 더 큰 자산을 굴릴 배포도 없다. 그냥 여기에 이렇게 살자고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너무 편하다. 빚도 없고, 돈도 열심히 안 모아도 되고, 귀찮은 이사도 안 가도 되고, 에어컨도 설치한 지 얼마 안 됐고.. 세계 불황 신경 안 써도 되고. 정신승리!


 난 그냥 화장실이 하나 더 필요했던 것뿐인데. 편하게 똥을 싸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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