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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Oct 15. 2023

에필로그 : 망쳐버린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완성하는 일

가보자

  근처에 가죽공예를 배울  있는 작은 공방이 있길래 수업을 들어보고 싶었는데 빈자리가 없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것이 아마 1년여 전이었을 것이다. 얼마  수업을 들을  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가죽공예에 대한 흥미는  사이 아주 잃었던 터였지만 특별히 계획한 일도 없어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다. 처음  달은 딱히 과정이랄 것이 필요 없는 작은 소품을 만들었다. 도안을 그려 그대로 가죽을 재단하고, 미싱 바늘 아래를 지나면서 조각들을 이어주면 작은 주머니 같은 것이 완성되었다. 계획한 선을 따라 바느질땀이 고르게 나오도록 미싱을 다루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그래도  과정은 비교적 짧고 단순해서 실수가 나오기 어려웠고, 완성된 사각 주머니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바느질땀이 가장 예쁘게 나온 것을 엄마에게 선물로 주었다.    


 과정이 길면 실수가 쌓인다. 나의 실수와 너의 실수, 그리고 우리의 실수가.

 

 사실 공방 선생님은 수업에 통 관심이 없었다. 취미로 하는 기초반 수강생이라도 이러한 공정은 ‘왜’ 필요한 것인지, 그 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중인지 알고 작업을 하고 싶은데, 그냥 순간순간 이렇게 자르라, 저렇게 붙이라고만 하고 자신이 판매할 물건을 만드는 일에 다시 몰두한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나도 알고 있다면 무성의한 지시라도 그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을 할 수 있을 텐데. 소품 단계를 지나고 큰 가방을 만들기 시작하자 무지와 무성의가 만나 그렇게 하나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1. 배송 온 가죽이 얼룩덜룩하다. 배색도 영 칙칙하고. 역시 가죽은 직접 보고 사야 했는데.

2. 갑자기 가죽이 너무 두꺼워 내가 원하는 모양의 가방을 만들  없다고 하는 선생님. 지난주 도안을 그릴 때도  가죽이었는데…? 원래 계획했던 가방과 조금 어색해진 순간.

3. 가죽 끝부분을 얇게 피할 해야 한다며 기계로 가져가더니 와라락  잘라먹는 선생님. ‘어머 어쩌죠?’ 어쩌라고남은 가죽이 얼마 없어서 가방 사이즈는 기이해지고

4. A도안을 대고 자르라고 해서 잘랐더니 옴마! B도안이라고 하는 선생님. 안감이 부족해져 속을 드러내버린 내부….


 가방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들은 보정되었거나, 눈에 띄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수준이다. 겉으로 보면 멀쩡하다. 그렇지만 이상순이 그랬다. ‘내가 알잖아.’ 이 모든 과정을 내가 알아서 나는 수업시간이 괴로웠다. 그러다 어느 주말 만난 엄마가 이번 가방에 대해 묻길래 이미 너무 망쳐버려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엄마가 한숨을 섞어 웃으며 하는 말 :


"이미 망쳐버린 걸 끝까지 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냐?"


 그것은 가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언제까지가 간단해서 실수가 없었던 작고 예쁜 소품 같은 삶이었을까. 하루하루 눈앞의 과제를 해치우는 일에만 급급하여 이렇게 자르고, 저렇게 이어 붙이며 만들어 온 직장생활은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속은 군데군데 하자 투성이인 가방처럼 되어버렸다. 직장생활이 길어지면 크고 작은 실수와 놓쳐버린 기회와 후회되는 순간들이 쌓여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뭔가 묘하게 어긋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미 망쳐버린 것 같은 직장생활을 억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은 불쑥불쑥 일어나 마음을 휘젓는다. 


 그러나 나는 이 가방을 완성하고 싶다. 많은 부분이 잘못되었지만 잘 된 부분은 더 많다. 나의 모든 과오를 품은 가방을 완성하여 번듯하게 들어보고 싶다. 내가 만든 가방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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