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투쟁 중
투쟁 : 어떤 대상을 이기거나 극복하기 위한 싸움
일을 정말 잘한다고 소문난 직원이 있다. 스트레스에도 맷집이란 것이 있다면 그는 정말 맷집이 좋은 사람이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법 없이 그냥 빠르고 묵묵하게 해치워버린다. 언젠가 인사발령으로 그가 부서 이동을 하게 되자 그가 하던 일을 3명이 나눠서 해도 모자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얼마 전 새로이 알게 된 것은 그가 지독한 빵돌이라는 것이다. 주말이면 항상 서울의 유명한 빵집이나 카페를 간다고 하고 지역만 대면 바로 여러 곳을 추천해 준다. 격무에 피로할 텐데 활력 있게 살기까지 하는구나, 대단하다 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일단 서울 나들이는 왕복에만 최소 3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는 토요일에도 서울에 가고 일요일에도 서울에 가며 게다가 매주 간다. 1일 2카페는 기본이고 3카페도 불사한다. 최근에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셔서 2주 정도 주말 서울 나들이를 못했는데 무척이나 힘들어했다고 들었다.
말 그대로 운동을 정말 '많이' 하는 직원도 있다. 한동안 주말이면 혼자 낯선 사람들 속에 섞여 어느 산으론가 떠나는 단체 버스에 몸을 싣고 말없이 산만 타고 돌아왔다고 했다.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주관하는 '100대 명산 등반' 같은 것에도 도전했다고 했다. 산을 100개 탔다는 소리다. 요즘 그는 자전거 라이딩도 한다. 주말에 수십 킬로 자전거 라이딩은 예사다. 나는 주말에 누워만 있어도 주중을 버티는 것이 쉽지 않은데 참 다들 에너지 넘친다고 생각하다가도 뭔가 이상한 지점이 있다. 평일에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거실에서 실내 자전거를 2시간 타다가 출근한다고 하고 그것도 모자라 점심시간에는 회사 주변의 천변을 속보하고 돌아온다. 그는 정말 가느다랗게 말랐다.
남편은 스포츠 광이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항상 스포츠 경기를 본다. 스포츠를 모르는 내 눈에는 정말 세상의 모든 경기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 야구를 제일 좋아하고 축구 배구 농구 핸드볼까지. 국내 경기, 해외경기를 따지지 않고 남자리그, 여자리그 가리지 않는다. 올림픽은 축제다. 일정이 없는 날이면 정말 하루 종일도 본다. 요즘은 스포츠 예능도 본다. 뭉쳐야 찬다, 골때녀, 최강야구... 오늘은 뭘 하나 봤더니 일본 배구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 그도 뭔가 이상하다.
나는 그냥 집순이다. 이제는 내가 집순이임을 온전히 인정하기로 하였다. 외출과 만남은 그저 나를 지치게 한다. 체력이 문제인가 싶어 달리기도 해 봤지만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나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회복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그저 누워서 유튜브나 본다. 지난 3년은 정말 유튜브만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를 봐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자꾸 일 생각이 난다. 집집마다 TV가 생기고 나서부터 인간은 더 오랫동안 노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타인의 눈에는 세상 쓸모없는 영상이나 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일종의 투쟁이다. 나는 누워서 멍하게 불안과 초조를 물리치는 중이다.
우리는 아마도 각자 치열하게 투쟁 중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잠식하여 주저앉게 하지 못하도록.
번뇌를 시름을 묻어두고 내일도 무사히 출근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