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전 직원이 봄가을에 근교로 1박 2일 워크숍을 가던 시절이 있었다. 자주는 아니었고 나도 겨우 세네 번 가본 것 같다. 신입시절에는 워크숍이 얼마나 싫던지. 서먹하고 불편한 사람들과 시시한 게임과 술로 채워가는 그 시간이 너무 괴로워 부득이하게 당일 귀가하는 사람들의 차를 얻어 타고 동기 몇몇과 대탈주를 감행했던 기억이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애들은 다 없어지고 숙소에 어르신들만 남아있어서 다음부터는 섬으로 워크숍을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그런데 직장생활 10년 차쯤에 갔던 워크숍은 놀랍게도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몸에 밴 예의 그 거부감으로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올라왔는데 막상 가보니 상사들이라고 해도 다 10년 이상 본 사람들이라 그렇게까지 어렵지가 않고, 잘 모르던 직원들과 잠시 몸 쓰는 게임 정도 유쾌하게 할 수 있는 사회성을 장착한 덕분인지 1박 2일 워크숍도 재미있더라.(이래서 그들이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었구나!) 마지막 캠프파이어를 위해 직원들은 불 붙인 양초를 끼운 종이컵을 소중히 들고 장작불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둥그렇게 모여 섰고, 사회자는 옆에 선 동료들에 생각해보고 서로 감사한 마음을 잠깐 가져보자는 주문을 했는데 뜻밖에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먹고살기 위해 이곳에 모인 측은한 인연일 뿐인데 서로 미워할 일이 대체 무엇이겠는가?
코로나19로 가끔 하던 저녁 회식도 명맥이 끊어진 터라 1박 2일 워크숍은 '그땐 그랬지' 정도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경영진이 1박2일, 그것도 금-토 워크숍 추진에 관심을 보이자 직원들은 시큰둥하다 못해 불만을 표하기에 이르렀다. 휴일을 회사 행사에 할애하는 것은 발상부터가 '시대착오'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의 낭만주의자 우리 부장님은 1박 2일 워크숍 추진에 적극적이었다.
"부장님, 요즘 토요일에 누가 워크숍을 가요."
"하루 재밌게 갔다오면 되지. 주말 많잖아~~"
"주말 특근 수당 달라고들 할걸요."
"에이~ 누가 그렇게 해~~"
시대가 이렇게 변해버린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인지 전직원을 대상으로 워크숍 선호도 설문조사를 실시하기에 이르렀고. '금-토 1박 2일 워크숍'과 '당일 체육대회'를 두고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 당연하게도 75%의 찬성으로 당일 체육대회로 워크숍 방향이 결정되었다. 부장님은 시무룩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결과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했는데 멸종한 줄 알았던 직장생활의 낭만파들이 사내에 25%나 생존해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블라인드에 만연한 회사에 대한 냉소와 비난과 비판에 눈치를 보며 자취를 감추었던 그들은 그렇게 생존신호를 보냈다.
나도 사실은 1박 2일로 워크숍이 가고 싶었던 것 같다. 평소에는 어울릴 기회를 굳이 갖지 않는 사람들과 게임도 하고 술도 먹으며 그렇게 하루 보내고 먹고 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둘러 보며 느꼈던 그 측은지심으로 다시 한번 따뜻하게 회사를 생각하고 싶었다. 직장생활에 정말 낭만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도 낭만파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