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풍뎅이 시인 Oct 15. 2023

탕비실의 우리

  예전에 근무하던 사무실에는 외부로 통하는 베란다에 탕비실이 있었는데 직원들은 그곳에서 자주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회사 건물은 오래되기도 했고 직원 수에 비하면 좁은 편이라 휴게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는데 그 두 평 남짓한 여유 공간이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사내 흡연자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보통 하나의 단위업무를 끝내면 꼭 담배를 태우러 나가는 것 같은데 수다 타임도 비슷하다. 하나의 업무를 끝내면 어떤 환기가 필요한데 그럴 때는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동료와 잠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머릿속이 좀 정리된다. 일단 잠깐이라도 컴퓨터 앞을 떠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무실 안쪽은 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해서 직원들이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일이 잘 없는데 둘셋씩 탕비실로 은근히 사라지고 나면 방음이 썩 좋지 않은 벽을 넘어 웃음소리가 사무실로 흘러들었다. 탕비실을 벗어나면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기를 싹 지우고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 모니터 뒤로 얼굴을 숨겼다. 


  탕비실에서는 일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행사, 어제 저녁에 본 드라마, 휴가 때 간 맛집. 탕비실에서는 직장인이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나고 그래서 조금은 서로를 가깝게 느끼게 된다. 옆 자리에 앉은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이 탕비실이 너무 소중한데 요즘은 공간이 더 부족해져 별도의 탕비실도 잘 없다. 커피나 차를 타서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든다. 공용 직원휴게실은 어차피 삼삼오오 친한 사람들과 짝을 지어 오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낯선 교류가 일어나기 어렵고.


  사무실 답답하다. 나와 같이 탕비실로 가자.

이전 16화 혼밥하는 직장인의 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