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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Mar 27. 2018

혼밥하는 직장인의 사정

평일의 회사 밖은

오늘의 점심 : 콩나물국밥 기본형

어제의 점심 : 라테와 크루아상 하나




 요즘에는 주 1회 정도만 팀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나머지 날에는 혼밥을 하거나 편한 사람과 따로 약속을 잡아 점심을 먹는다. 혼밥을 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최근에는 사내 여성 비율이 많이 높아졌지만 내가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우리 회사는 심각한 남초 회사였다. 다들 기분이 좋아도 밥 먹는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 서로 대화도 없이 밥만 푹푹 떠먹었다. 10분, 길어야 20분이면 식사가 끝났다. 식사가 끝나면 사무실로 돌아가 남은 점심시간 동안 각자 체력을 회복했다(잤다).

 일단 그 섭취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속도를 올리며 엔진을 달구어 끝까지 먹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20분이라는 시간은 밥 반 공기를 비울 시간도 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먹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미 빈 밥공기에 물까지 부어 싹싹 들이마시고는 내가 언제 다 먹나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젓가락 끝을 쪽 빨고는 놓게 된다. 내가 어떤 신호처럼 젓가락을 딱 놓으면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시커멓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4시가 되면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억지로 속도를 맞춰 먹으면 영락없이 체했다.

 시커먼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밥집'만 좋아했다. 메뉴 고민도 필요 없는 무난한 백반집이 0순위, OO국이 1순위, OO찌개가 2순위 정도 되겠다. 해장을 해야 하는 날은 또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점심값이 아깝게 느껴졌다. 한 끼의 점심식사에 드는 비용은 6천 원, 7천 원 하며 오르더니 요즘은 8천, 9천까지 간다. 뭐 서로 입맛들이 달라 내가 싫어하는 음식도 기꺼이 사 먹어야 한다는 것 까지는 이해하더라도, 나는 반 밖에 못 먹는데 그 돈을 다 내는 것이 아까웠다. 아침은 굶고 저녁은 대충 때우던 나로서는 하루에 한 끼, 제대로 먹는 유일한 식사였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천천히 배부르게 먹고 싶었다.

 밥 먹으면서 일 이야기를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식사하는 시간을 활용해 업무 진행상황을 체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일과 휴식을 나누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야근도 당연한 줄 안다. 내일 또 일 할 건데 저녁에 그거 조금 더 쉬고 덜 쉬는 게 대수냐는 식이다. 우리 팀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날 이슈가 된 업무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때가 가끔 있다. 고문이 따로 없다. 점심시간은 단 한 시간이라는 사실이 나를 버티게 해준다. 팀장님이 해맑게 '커피 마시면서 더 이야기하자'라고 하는 날도 있는데 요새는 일 이야기 듣기 싫다고 하고 나는 가버린다.(쿨하신 우리 팀장님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따로 약속을 잡아 팀 식사에서 빠졌다. 입사동기 등 편한 사람들과 느긋하게 근황 토크하며 인간다운 식사를 하니 좋았다. 그러다 약속이 없는 날에도 약속이 있다며 팀에서 빠져 회사 사람들이 없는 으슥한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지나가는 척 하며 슬쩍 식당 내부를 확인하고 회사 사람이 없으면 들어가 밥을 먹었다. 나중에는 변명도 없이 그냥 혼자 밥을 먹겠다고 나갔다. 혼밥력은 갈수록 높아져 이제는 회사 사람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는 식당도 슥슥 잘 들어간다. 혼자 돌아다니며 어느 날은 국수를 먹고, 어느 날은 돈까스를 썰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그저 과일주스 한 잔만 먹기도 한다. 음식에 온전히 집중하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밥을 먹기도 한다. 음악도 듣는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 뭐 몇 가지나 된다고, 점심식사만이라도 마음대로 하고 싶다. 그러고서 회사 주변 아파트 단지를 돌며 산책을 하거나, 가게에 들러 사지도 않을 것들을 한참 구경 할 때도 있고, 놀이터에서 그네도 탄다. 혼자 오롯이 보내는 이 한 시간이 완전한 휴식이다. 직장인들에게는 항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회사 밖 '평일의 오후'를 만끽하는 것이다.


요즘 말하는 소확행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혼밥같다.


소화엔 개비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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