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가치
1년 휴직한 적이 있다. 힘들게 휴직을 결정하고 나자 다른 생각들이 빠르게 정리되었던 반면 고민이 커져갔던 문제는 돈이었다. 처음에는 1년쯤 돈을 벌지 않는다고 내 인생이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는 생각에 돈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래도 아껴는 써야지' 하는 생각이 커지더니 나중에는 1년 동안 못 벌게 될 돈들이 눈덩이처럼 느껴졌다. 데굴데굴 굴러와 나를 쓰러뜨릴 것만 같았다. 마지막 근무일에 통장을 하나 새로 만들었고 모아둔 돈에서 얼마간을 떼어 넣어두었다. 1년 동안 이 돈으로 살아야지 하며. 조금은 초조했다.
휴직하고 맞은 첫 월요일. 행여나 실수로 처리하지 못한 업무로 인해 휴대폰이 울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시리즈물을 보면서 오전을 보내다가 요가를 등록하러 나섰다. 동네 체육센터로 가는 길 내내 배가 고팠다. 아침은 늘 그랬듯이 먹지 않았는데 이미 점심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익숙한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을 수십 개나 지나치며 나의 1년 간의 생활비를 담은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김밥 한 줄에 4,000원이라니. 저걸 먹었다니 미쳤었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30분을 걸었던 것 같다. 요가 수업을 결제하며 반전은 더욱 커졌다. 2주 전에 수강료를 알아보며 저렴해서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오늘 결제를 하려니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돈을 벌지 않으니 비로소 돈의 노예가 된 기분이다. 평소에는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달라는대로 결제를 했었다. 밖에서 뭔가를 사 오면 엄마는 항상 그게 얼마냐고 물었는데 나의 대답은 항상 '몰라'였다.
근처 시장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시장 안에는 저렴해서 자주 가던 칼국수 집이 있었는데 돈을 벌지 않게 되고서야 그 칼국수 가격이 3,500원이었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지갑에서 5,000원짜리를 조심스럽게 꺼내게 된다. 잔돈으로 거슬러 받은 천 원짜리 한 장과 500원짜리 한 개도 꼼꼼히 챙겨 넣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신문도 한 부 샀는데 800원이었다. 1,000원을 내고 200원을 거슬러 받았다. 내일은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이래서야 어떻게 친구를 만날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셔야 할 것이다.
평일 대낮에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니 어째서 이 사람들은 이 시각에 여기 있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그리고서 저마다에게 무노동의 당위성을 부여하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나이가 많으니까, 저 사람은 아이가 있으니까, 저 사람은 어려보이니 아마도 구직 중 일거야. 나에게는 당위성이 없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한 사람이 질 낮은 두루마리 화장지 몇 묶음을 바닥에 질질 끌어가며 들고 가게를 가가호호 방문하며 판매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살 것 같지가 않았다. 세상은 이렇게도 돌아가는데.
당장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