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풍뎅이 시인 Dec 01. 2015

무급의 위엄

돈의 가치

 1년 휴직한 적이 있다. 힘들게 휴직을 결정하고 나자 다른 생각들이 빠르게 정리되었던 반면 고민이 커져갔던 문제는 돈이었다. 처음에는 1년쯤 돈을 벌지 않는다고 내 인생이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는 생각에 돈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래도 아껴는 써야지' 하는 생각이 커지더니 나중에는 1년 동안 못 벌게 될 돈들이 눈덩이처럼 느껴졌다. 데굴데굴 굴러와 나를 쓰러뜨릴 것만 같았다. 마지막 근무일에 통장을 하나 새로 만들었고 모아둔 돈에서 얼마간을 떼어 넣어두었다. 1년 동안 이 돈으로 살아야지 하며. 조금은 초조했다.

 휴직하고 맞은 첫 월요일. 행여나 실수로 처리하지 못한 업무로 인해 휴대폰이 울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시리즈물을 보면서 오전을 보내다가 요가를 등록하러 나섰다. 동네 체육센터로 가는 길 내내 배가 고팠다. 아침은 늘 그랬듯이 먹지 않았는데 이미 점심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익숙한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을 수십 개나 지나치며 나의 1년 간의 생활비를 담은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김밥 한 줄에 4,000원이라니. 저걸 먹었다니 미쳤었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30분을 걸었던 것 같다. 요가 수업을 결제하며 반전은 더욱 커졌다. 2주 전에 수강료를 알아보며 저렴해서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오늘 결제를 하려니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돈을 벌지 않으니 비로소 돈의 노예가 된 기분이다. 평소에는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달라는대로 결제를 했었다. 밖에서 뭔가를 사 오면 엄마는 항상 그게 얼마냐고 물었는데 나의 대답은 항상  '몰라'였다. 

 근처 시장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시장 안에는 저렴해서 자주 가던 칼국수 집이 있었는데 돈을 벌지 않게 되고서야 그 칼국수 가격이 3,500원이었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지갑에서 5,000원짜리를 조심스럽게 꺼내게 된다. 잔돈으로 거슬러 받은 천 원짜리 한 장과 500원짜리 한 개도 꼼꼼히 챙겨 넣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신문도 한 부 샀는데 800원이었다. 1,000원을 내고 200원을 거슬러 받았다. 내일은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이래서야 어떻게 친구를 만날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셔야 할 것이다.

 평일 대낮에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니 어째서 이 사람들은 이 시각에 여기 있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그리고서 저마다에게 무노동의 당위성을 부여하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나이가 많으니까, 저 사람은 아이가 있으니까, 저 사람은 어려보이니 아마도 구직 중 일거야. 나에게는 당위성이 없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한 사람이 질 낮은 두루마리 화장지 몇 묶음을 바닥에 질질 끌어가며 들고 가게를 가가호호 방문하며 판매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살 것 같지가 않았다. 세상은 이렇게도 돌아가는데.


 당장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전 13화 예금가입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