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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Jan 15. 2023

괜찮아져 버렸다

 지난해는 고통스러웠다. 인사이동으로 전혀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단기에 습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곧장 기한의 압박에 시달렸다. 전임자는 인사이동 직후에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 자리를 비웠다. 목이 너무 아프다고 해서 카톡으로 업무를 물어봐야 했는데 속이 뒤집어졌고 휴대폰을 깨버리고 싶었다. 하루 종일 엑셀을 봐야 했다. 일과시간 내내 매초 낭비 없이 일을 해도 턱없이 부족했다. 저녁 7시 정도가 지나면 거짓말처럼 뇌가 멈춰버렸고 사리분별을 할 수가 없어서 야근도 길게 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밀려드는 일을 기계처럼 처리하느라 정상처럼 보였지만,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우면 기한의 압박과 실수의 두려움이 나를 점령하여 눈물이 났다. 주르륵. 나는 진지하게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창업이나 투자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기한에 쫓겨 기계처럼 두 달을 보내다가 나는 점차 괜찮아졌다. 그렇게 버텨내 버렸다.


 2년 전 우울증으로 회사를 1년 쉬고 복직하여 근근이 1년을 보낸 한 동료는 여름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 봄에는 유달리 에너지와 의욕이 넘쳤는데 의사는 그것이 이를테면 조증이라 했다 한다. 우울은 목소리를, 표정을 앗아갔고, 몸은 느릿느릿해지고, 주위 사람들은 서서히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갔다. 그녀는 또 휴직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고 버티거나 혹은 그만두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녀에게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미 한번 괜찮아진 경험이 있었기에 그만두는 것을 선택하기는 어려웠다. 매일 출근하였고 너무 힘들 때마다 휴게실에 가서 두세 시간을 쉬다가 자리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일을 이어나갔다. 팀원들과 부서장은 다행히 많은 것을 감내해 주었다. 그 사이 양을 늘린 약이 효과를 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서서히 괜찮아졌다. 버텨내 버렸고, 괜찮아진다는 것을 또 경험해 버렸다. 나는 그녀의 극복을 존경한다.


  회사 내에서 나름 큰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한 해를 갈아 넣었던 한 동료는 부서이동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같이 투입되었던 인력들은 다른 자리를 찾아 하나 둘 떠나고 혼자 남아 프로젝트 보수에 몇 달 동안 시달렸음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결국 몸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얼마간의 병가를 요청하고 있었는데 인력난에 시달리던 부서장의 냉정한 태도에 욱하여, "부서장이란 사람이 직원이 아프다는데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것밖에 없냐"라고 비난하여 버렸다. 그는 부서장과 갈등 끝에 3주간 병가를 가게 되었다. 너무 마음이 상하여 휴직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잘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그는 복직인사를 하러 왔다. 놀랍게도 그는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첫마디를 건네며 같은 팀, 같은 업무로 돌아갔다. 당장 회사를 떠날 것처럼 행동에 거침이 없었던 상태였지만, 적정한 휴식을 취한 후 그 역시 괜찮아져 버렸다.


 친한 후배는 회사 일이 너무 본인과 맞지 않는다며 퇴직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하며 여러 가지 다른 일을 모색 중이라고 하였고 꽤 구체적이기까지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최근의 몇 가지 경험을 들려주며 곧 괜찮아지는 일일 수 있으니 신중할 것을 조언했다. 후배는 그렇게 귀담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얼마 만에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며 이제 다닐만하다고 하였고 만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다.


그렇게 모두 괜찮아져 버렸다. 역시 존버가 답인가?


 한 해의 가장 중요한 과업을 처리하면서 중압감에 시달리던 나는 지난해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기계처럼 일하다가 집에서는 일 생각과 불안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뇌를 드러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유튜브 영상을 마약처럼 주입하면 그동안은 잊히니 괜찮았다. 또 그만두고 싶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고 창업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한 해동안 여러 사람이 괜찮아지는 것을 보았다. 고통은 일시적이었고 터널에는 끝이 있었고 사람들은 괜찮아졌다. 그 사실이 나를 고통 속에 버려두게 하였다. 경험치를 획득한 것 같으면서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지혜가 건강하고 이로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심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고통과 버팀과 괜찮아짐을 반복하면서 얻게 된 경험에 굴복하여 다른 돌파구는 닫아두게 될 것 같다. 그래서 퇴사하지 않는 것인가?


'이겨냈었잖아!'는 희망인 동시에 고통 속을 묵묵히 걸어내야 하는 절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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