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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Oct 15. 2023

정신양호실

겨우 양호해

  요즘 사내에는 우울증으로 인한 병가와 휴직이 정말 많다. 한 명이 회복하여 돌아오면 다른 한 명이 떠나는 수준이다. 우울증은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나 2~3주 정도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처음에는 걱정과 고민으로 불면증을 겪는 것으로 가볍게(?) 시작되는 것 같다. 불면증이 2주 이상 지속되면 뇌가 망가지기 시작한다. 이때라도 병원에 가면 괜찮은 것 같은데, 거기서 더 방치하면 뇌의 기능 저하가 기분조절 장애와 업무능력 저하로 이어져서 의학적 치료 없이는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이 되는 것 같다. 단기간의 스트레스도 강도가 높은 경우 즉각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무섭다. 


  두 달 전이던가.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는 일과 사람과의 작은 갈등이 겹쳐 집에 돌아와서도 일 생각, 사람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기간이 2주 정도 있었다. 낮 동안에는 정상인 흉내를 내며 멀쩡하게 일을 잘하다가 퇴근하고 어둠이 내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에 틀어박혀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보게 되었고 결국 주르륵 눈물이 나는 것이다. 나의 뇌가 찰랑찰랑 차오른 우울 물질에 푹 담겨 절여지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인들의 우울증 사례를 가까이서 보며 경각심을 가졌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잠은 잘 자야 한다는 생각에 마그네슘과 테아닌을 복용하며 적정시간의 잠을 사수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했는데 정말 고장이 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당장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곳에 전화를 해야 하는 순간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고 집 근처의 정신건강의학과에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놀랍게도 예약이 밀려 있어 초진은 1달 후에나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한 달 후의 진료가 무슨 소용일까 싶으면서도 예약을 요청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아니, 정신건강의학과에 줄을 선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묘한 위로가 되었다고나 할까. 다행히 그날 점심이 지나자 아침의 그 절망스러운 기분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병원에 가기 전까지 다른 방식으로 정신건강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에게는 그런 경우 도움이 되는 것이 책과 명상과 운동이다. 아직까지 뇌가 고장 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관리라는 것이 가능하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책 몇 권을 주말에 몰아서 읽어냈고 조깅도 악착같이 나갔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의 유튜브 영상을 몇 편 주의 깊게 시청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컨디션이 조금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고 병원에는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진은 다녀왔는데 진료 과정(우울증 테스트와 상담)에서 나의 상태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깨닫게 되었고, 더 이상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회사 건물 지하에는 조촐한 체력단련실이 있는데 지금 사내에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정신양호실이다. 잠시라도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절망적인 순간을 흘러 보낼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다. 위로가 되는 글귀, 마음을 환기시키는 음악, 나의 고민을 배려 없이 늘어 놓을 수 있는 가까운 동료가 있는 정신양호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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