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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훈 Jul 04. 2024

상대의 영역에 들어갈 때 지켜야 할 조건

* 인물 사진은 당사자의 허락을 받거나 극단 인스타에 공개된 것만 사용합니다.


우리의 희망과는 다르게, 사람 사는 곳은 언제나 우여곡절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나의 글은 좋은 일들만 다루었지만, 실제론 늘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신입 발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도 우여곡절은 있었다. 여러 마찰을 목격했고, 여러 불상사가 발생했다. 특히 예술의 특성 때문일까, 연극판에는 자기만의 기조와 철학이 확고한 사람들이 많다. 이렇듯 다양하지만 또렷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탓에 극단엔 여러 잠재적 갈등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심각한 위해를 당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타인에게 친절하고 다정해지려 노력한다. 내면에 불만이 있더라도 정신력으로 이를 억누르고 친절함을 발휘한다. 하지만 정신력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내면의 불만을 조절하던 정신력이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여과 없는 단어들이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정신력은 체력에서 비롯되기에 체력 고갈은 곧 정신력 고갈로 이어진다. 이런 이유로 고된 연습의 반복은 결국 내면을 다스리던 정신력을 소진한다.


비교적 체력 소모가 적은 단막극이라 할지라도, 정기 공연에 비해 체력 소모가 적을 뿐 여전히 상당하다. 더군다나 단원 대다수가 본업이 따로 있는 직장인이다. 고된 일과 후 쉴 틈도 없이 연습실로 달려와야 하는 것이다. 이런 날들이 한 주에 4~5일씩 반복되면, 너무도 지친 나머지 표정 관리에 실패하는 배우들이 하나둘 보인다. 연습 초반 서로 배려하고 존중했던 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다. 그에 따라 단어와 말투도 조금씩 더 날카로워진다.


『돌의 이름』팀의 배우, 연출 그리고 오퍼


다행히 우리 『돌의 이름』팀은 특별한 갈등 상황에 부닥친 적이 없다. 배우진의 체력도 체력이지만, 연출진의 조율 능력이 뛰어났던 듯하다. 한 달이라는 연습 기간이 물 흐르듯 흘러간 덕에, 다른 팀도 같은 분위기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팀은 예상보다 여러 풍파가 휩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팀원이 돌아가며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공연 당일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전원이 모인 팀도 있었고, 팀 내 갈등이 너무 커져 버린 바람에 배우가 중도 이탈한 팀도 있었다. 전자의 상황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후자의 상황은 충분히 예방 및 조율이 가능하다. 그래서 후자의 사건을 개관하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을 펼치고자 한다.


신입 발표회 준비 중 이탈한 단원은 입단 전부터 연기를 경험해 본 사람이었다. 연기를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배우마다 나름의 비결이 생긴다. 그 비결은 배우 개개인이 갖는 일종의 연기 철학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해당 팀의 연출은 극의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조율하고 통제하는 성향이었다. 이 또한 연출 나름의 철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기는 근본적으로 행위 예술이다. 이 말인즉, 배우 대부분은 자신만의 창의력을 자유롭게 발휘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통제하려는 자와 자유로워지려는 자, 이 둘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마찰을 빚는다.


이런 경우 연출과 배우의 생각이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한다.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아 종국엔 감정 문제로 치달을 때도 있다. 혹자는 연출의 지도를 배우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실제 단원 다수가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물론 배우가 연출의 지도에 따르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연출은 관객의 시야로 무대를 바라보기에 배우가 놓치는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출의 지도는 가능한 한 거시적인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극의 방향성·배역의 개요·무대 장치와 미장센·무대 조망 등 넓은 시야로 극과 배역을 조율하는 게 연출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줄넘기를 찾는 사람들』팀


배우도 물론 극 전체를 아우르는 시야를 가져야 하지만, 그 물리적인 한계는 명확하다. 따라서 배우는 극 전체보다 배역을 다듬는 데 주력하게 된다. 그런데 연출이 배우의 손동작부터 서 있는 자세 그리고 표정까지 전부 개입하면, 배우로선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든다. 배우 또한 연출과 같은 예술가이다. 예술가는 자기감정과 생각의 주인이 되려는 사람이지, 타인의 감정과 생각대로 움직이는 노예가 되려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가끼리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예술은 자유이자 창의성이다. 연극 무대를 창조하는 모든 사람은 나름의 예술적 소양으로 자유와 창의성을 추구한다. 이런 점에서 연출과 배우는 함께 연극을 완성하지만, 그 역할에서 완연한 차이를 보인다. 연출은 극을 조각하는 예술가인 반면, 배우는 배역을 조각하는 예술가이다. 둘은 훌륭한 공연이라는 거시적 목적을 공유하지만, 각각 기여하고자 하는 미시적 역할이 다르다. 따라서 동일한 목적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각자의 영역이 마구 뒤섞일 명분을 제공하지 않는다. 두 영역은 확연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물론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소통조차 멈추라는 뜻은 아니다. 연극에서 소통만큼 중요한 건 없다. 연출도, 배우도, 심지어 오퍼도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영감을 나눌 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훈수꾼의 눈에 더 많은 수가 보이는 것처럼, 다른 역할의 눈에 더 많은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야는 종종 크나큰 도움이 된다. 다만 각자의 영역을 침범할 땐 아래 세 가지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1. 절대 지적하지 않는다.

2. 조언의 배경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다.

3. 질문 형태로 제안하여 상대가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위 세 가지 조건이 전제되면, 침범은 더 이상 침범이 아닌 공유가 된다. 내 영역이 침범받는다고 느낄 상황에서, 내 영역을 상대와 공유한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 3번 항목은 지나쳐도 상관없다. 하지만 1, 2번 항목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바로 이해할 수 없는 조언을 부연 설명 없이 툭툭 던지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게 인간의 기본 심리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갈등 상황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이는 인류 역사가 증명한다. 그래도 위 조건을 지키면 연습 분위기를 한층 더 부드럽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흰 티셔츠』팀


나는 특정 인원의 행동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처지를 대변할 만큼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 갈등은 당사자 모두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 영역 침범은 극단 활동 중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갈등 원인 중 하나이다. 나는 특정 원인이 갈등의 씨앗으로 자주 부상한다면, 좌시를 멈추고 예방 및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모든 단원 사이에 넘어갈 수 없는 벽을 세울 순 없다. 그래서 '상대의 영역에 들어갈 때 지켜야 할 조건'을 고민해 보았다.


혹자는 위 세 가지 조건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뻔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며 흘려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자주 잊는 것들이다. 마치 호흡하는 걸 항상 잊는 것처럼 말이다. 연습 분위기는 극의 수준을 좌지우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우리 극단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연극인 모두가 조금 더 좋은 연습 분위기를 누렸으면 한다. 이것이 내가 장광설을 늘어놓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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