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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훈 Jun 20. 2024

관객도 연극의 일부다

* 인물 사진은 당사자의 허락을 받거나 극단 인스타에 공개된 것만 사용합니다.


신입 발표회는 세 팀이 연달아 공연 후 합동 댄스로 마무리하면 되었다. 비록 외부 관객 없는 내부 공연이지만, 누군가 내 연기를 본다고 생각하면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기 마련이다. 수년간의 연극 경험에도 공연 전 떨리는 마음은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첫 공연 때의 기억이 생생한데, 온몸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원치도 않던 바이브레이션을 넣어가며 대사를 했던 적이 있다. 아마 이번 신입 발표회가 첫 무대인 동기들은 긴장을 누그러트리려 갖은 애를 썼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긴장을 조절하는 여유 정도는 부린다. 긴장을 조절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는데, '관객도 연극의 일부다'라며 주문을 되뇌는 것이다. 배우가 무대에서 긴장하는 원인은 거의 한 가지로 귀결된다. 바로 '관객'이다. 관객이 아니고선 배우가 긴장할 이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관객을 연극의 일부로 인식하면 긴장 해소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연극의 3요소는 배우·관객·희곡이다. 3요소에 '무대' 대신 '관객'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관객의 역할이 관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관객은 단순 관람을 넘어, 배우와 호흡하며 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연의 한 축이다.


공연 전에는 관람 중 주의 사항을 전달한다. 이를 잘 들어보면, 마치 관객이 일방적으로 배우를 존중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관객이 배우를 존중해야 하는 만큼 배우도 관객을 존중해야 한다. 공연 당일 무대에서뿐만이 아니다. 배우는 공연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마지막 커튼콜이 내려가는 순간까지 존중의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때때로 관객 존중의 가치를 폄하하는 배우가 있다. 아마추어 특성상 이런 성향이 도드라지는 배우가 종종 보이는데, 이런 배우는 한 명만으로도 연습과 공연 분위기를 잔뜩 흐린다.


심심치 않게 이런 말이 들리기도 한다. "취미를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언짢아지곤 하는데, 이 말 자체보다 이를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그 뻔뻔함이 더 불쾌하다. 아무런 문제의식조차 없을 때 나올 법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물론 배우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모를 수는 있다. 우린 연기를 배워본 적 없는 아마추어 배우니까. 그런데 '관객을 존중해야 한다는 걸 꼭 가르쳐줘야 알 수 있을까?'라고 자문해 보면, 솔직히 이해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사고방식이다. 나는 이를 지식이 아닌 상식의 영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연극패 청년]의 단원들


아마추어 극단일지라도 모든 과정의 끝에는 관객이 존재한다. 연극이 완성되는 일련의 과정은 오로지 관객 앞에서의 공연을 목적으로 한다. 연기뿐만이 아니라 연출·무대·테크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단 한 가지, '관객 앞에서의 공연'이다. 자아실현이니 재미 추구니 하는 온갖 그럴듯한 목적은 그다음 일이다. 연극은 관객과 함께 완성하는 집단 예술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목적이 우선이라면, 연극이 아닌 혼자 할 수 있는 다른 취미를 찾는 것이 옳다. 제기차기나 종이학 접기, 또는 줄넘기 2단 뛰기 같은 취미를 적극 권장한다.


관객은 귀한 시간을 내어 극장을 방문한다. 관객의 시간은 배우가 확보한 시간이 아니다. 배우는 관객이 특별히 할애해 준 시간을 연극으로 사용할 뿐이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탓에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소비 가능한 자산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시간이다. 우리가 무슨 짓을 벌여도 절대 벌 수 없는 게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중한 자산을 내준 관객에게 최고의 공연을 선사하진 못할지언정, 진정성 없는 공연을 선보여선 안 될 노릇이다. 연기력이나 연출력과 무관하게 공연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 정도는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관객 대부분은 '최고'가 아닌 '최선'을 원한다. 배우는 관객의 소중한 시간에 '최선'으로 보답하기만 하면 된다. 잘 생각해 보면 '최선'만큼 발휘하기 쉬운 능력도 없다. 우린 그냥 그걸 하면 된다. 


나는 앞으로도 잊을 만하면 '관객을 향한 존중'의 중요성을 재차 언급할 것이다. 이 덕목 없이는 연극의 존재 의의가 희석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아마추어 배우 주제에 남을 가르치려 드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덕목을 지식이 아닌 상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수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즘처럼 상식과 몰상식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상에서, 둘 사이를 구분 짓고 잊기 쉬운 공동 가치를 상기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관객도 연극의 일부다'라는 나의 주문은, 관객이 연극의 한 축을 당당하게 차지하는 요소임과 더불어 그들을 향한 나의 존중을 내포한다. 그래서 이 주문 덕에 결의를 다지고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 혹시 독자께서 연극에 발을 들인다면, 공연 전 이 주문이 내포한 의미를 떠올리며 읊어보길 권한다.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되도록 잊지 않길 바란다. '관객을 향한 존중', 이것이 공연의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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