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정의한 수평적 관계

수직적 또는 수평적 관계의 재구성

by 이일훈

언어는 이분법적 경향을 띤다. 언어는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중앙의 중도를 지향한다고 해도, 그것이 성립되는 순간 반중도가 형성된다. 즉, 중도마저 중도가 아닌 것을 만들어내어 이분법의 굴레에 빠진다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사고가 이분법적이기에 언어가 이렇게 되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알지 못한다. 이는 닭이 우선이냐, 알이 우선이냐하는 순환 문제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의 사고가 언어로 구현되는 순간 이분법의 구조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언어는 다시 우리 사고의 이분법적 성향을 강화한다.


회색 지대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분법적 양극단 사이에 고루 퍼져있는 무한한 스펙트럼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내가 추구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다만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과 별개로, 우리가 사고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부지불식간에 이분법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내 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또는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든 그 반대 개념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특히 우리의 이분법적 성향은 정확히 두 개의 단어가 나열될 때 더 강화되는 듯 보인다. 실제 그 두 단어의 정의가 상반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두 단어가 하나의 실체를 표현하는 두 가지 측면인 경우에도, 우리는 두 개의 단어를 나열할 때 이상하리만치 그것들을 대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앞면과 뒷면, 진보와 보수, 남자와 여자, 자본과 노동, 자유와 평등, 밝음과 어둠 등 이런 대립 구도를 갖는 두 단어의 묶음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앞면과 뒷면을 대치 관계로 보지만, 실제 둘은 서로를 보완한다. 간단한 예시로 동전을 떠올려 보자. 동전이 제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앞면과 뒷면 모두 필요하다. 한쪽만 있다면, 그 동전은 동전으로서의 원래 기능을 상실한다. 즉, 대치 관계로 보이던 대상들이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위에 나열한 다른 두 단어의 묶음들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상보적 관계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둘을 분리하는 것을 넘어 적대 관계로 간주한다.


나는 수평과 수직 또한 이런 속임수를 펼치는 두 단어의 묶음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수직 구조는 나쁘다'라는 암묵적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이런 이유로 수평 조직, 수평적 사고, 수평적 관계 등이 상대적으로 윤리적이고 진보적인 개념으로 인식된다. 때로는 이런 이분법적 편향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수직은 무조건 나쁘다고 외치는 세력도 있다. 심지어 그 외침의 순간에 형성되는 화자와 청자 간 관계 또한 수직적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수평'이라는 개념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나는 수직과 수평이 상보적 관계임을 염두에 두면서 이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왜 수직이 아니라 수평을 재구성하나요?' 다시 말하지만 수직과 수평은 상보적이다. 한 마디로 수평의 재구성은 곧 수직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수평'이라는 단어를 특정한 이유는, 수평이라는 개념의 지위가 과도하게 윤리적이고 진보적인 자리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평'이라는 단어가 갖는 함의는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이었다. 개인의 개성이 존중받아야 한단 이유로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평등한 시야는 개인의 개성을 묵살한다는 사실이다. 개성이라는 것은 차이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그 차이를 인식할 수 없다면, 개성이란 드러날 수 없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 개인이 가지고 있는 외모,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성향 등 모든 개성은 구성원 간 상대적 비교에 의해서만 나타난다.


우리는 뇌 활동이 멈추지 않는 한 끊임없이 대상을 판단한다. 판단하지 않으려는 행위도 판단이라는 전제 위에 성립된다. 그리고 판단의 작동 방식의 근간은 상대적 비교다. 예를 들어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 우리는 무작위 특정인의 외모를 판단할 수 없다. 판단을 위해서는 비교군이 필수적인데, 특정인의 외모를 판단할 수 있는 다른 외모의 소유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개성은 대상 간 비교로 드러나며, 비교하는 행위는 모든 판단의 근간이다.


그런데 판단의 과정은 수직적 사고를 동반한다. 이는 믿음의 문제가 아닌, 인간이라는 종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본능의 문제다. 비교하는 행위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우월을 정하기 때문이다. 설사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지 않더라도, 이는 희망 사항일 뿐 이미 머릿속에 들어선 생각을 되돌릴 순 없다. 다시 말해 판단은 본능이고, 이를 무마하거나 되돌리려는 행위는 의지이다. 예를 들어 '저 사람 진짜 잘생겼다'라는 판단은 인간의 의지로 막을 수 없지만, '외모 평가는 함부로 하면 안 돼'라는 생각은 의지의 발현이다.


이렇듯 수직적 사고가 단순히 의지와 언어로 수평적 사고가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수평'의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수평'을 '수직적 관계의 유연하고 효과적인 전환'이라고 재정의하고 싶다.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 개성이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위를 유연하게 전환하는 구조가 내가 재정의한 '수평'이다. 지금부터 혼동을 막기 위해 기존 통념의 수평을 '기존의 수평', 재정의된 수평을 '새로운 수평'이라 칭하겠다.


'기존의 수평'은 우리가 어떤 재능을 지녔든 완전히 동일한 평등 관계를 지향하는 반면, '새로운 수평'은 우리가 가진 각자의 재능에 맞게 지위 관계가 유연하게 변화한다. 만약 내가 세계적 권위의 테니스 선수라 할지라도, 아마추어 축구 동호회에 들어가면 나의 권위는 하락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존 일원의 지위가 무조건 나보다 높을까? 그건 아니다. 내가 해당 그룹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실력을 키워나간다면, 그때는 지위 관계가 전복될 수 있다. '새로운 수평'의 핵심 키워드는 유연성이다. 즉, 개인의 특정 배경이 모든 상황에서 고정적인 영향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새로운 수평'은 조직 내 구성원의 역할을 풍성하고 효율적으로 만든다. 다시 축구 동호회를 예로 들어 보자. 동호회는 결코 축구만으로 운용되지 않는다. 이는 행정 영역이나 사교 영역 등 다양한 영역들의 집합체이다. 다만 그 영역들의 최종 목적이 축구일 뿐이다. 우리는 개인마다 보유한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제각기 다르다. 그런데 '새로운 수평'은 개인이 자신 있는 영역에서 권위와 책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집단이 더 풍성하고 효율적으로 운용되도록 돕는다.


나는 '기존의 수평'은 방향만 다른 '기존의 수직'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수직'은 자신이 재능 없는 분야에서도 전혀 상관없는 권위를 끌고 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수평'도 자신이 재능 없는 분야에서 수평이라는 윤리적 개념을 끌고 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결국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직과 수평을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제시한 '새로운 수평'은 연관 없는 권위를 내세우지도, 연관 있는 권위마저 공격하지도 않는다.


자, 이제 끝으로 세 가지 개념을 예시로 정리해 보자. 회사에 팀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신입 사원이 그래픽 디자이너로 합류했다. 팀장은 행정 능력이 뛰어나지만, 디자인 관련 지식은 전무하다. 이때 팀장이 자기 지위를 이용해 그래픽 디자인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통제하려 한다면, 이는 '기존의 수직'이다. 반면 신입 사원이 허울 좋은 수평 개념을 끌고 와 팀장의 정당한 권력 행사를 공격한다면, 이는 '기존의 수평'이다. 그리고 팀장과 신입 사원이 서로의 재능이 발휘되는 영역을 존중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수평'이다.


'새로운 수평'은 우리의 본능인 수직적 사고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수평적 관계를 적절하게 절충한다. 이는 기존의 수직과 수평을 상호보완적으로 담아내는 개념이며, 나아가 '새로운 수직'이라는 표현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제는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친 사고를 멈추고, xy 축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입체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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