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직접 탐구해 본 '나만 중요한 사람'의 사고방식

by 이일훈

우리는 모두 자기중심적이다. 남을 위한 행동도 그 기저에는 '나의 만족감'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깔려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고, 주관적이며, 일방적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틀 안에서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생계형 자기중심'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이 범주를 박차고 나가는 '하드코어형 자기중심'을 탑재한 사람들이다. 지금부터 내가 언급할 자기중심형 인간은 이런 부류임을 밝힌다.


자기중심형 인간은 애초 상종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괜히 엮였다가는 감정과 체력, 심지어는 인류애마저 바닥을 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마음처럼 되겠는가. 사회생활 중 이들을 피하기란 폭우 속 빗방울 피하기보다 어렵다. 특히 같은 활동에 투입이라도 되면 그 문이 지옥행인 걸 알면서도 문고리를 돌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냅다 사표를 던지거나 좋은 사람들을 등질 순 없다. 우리에겐 그럴 이유도, 그 어떤 잘못도 없다.


이들은 말 그대로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한다. 이들의 존재는 변수가 아닌 상수이며, 거부할 수 없는 필연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유행하겠는가. 그래서 난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교훈을 수용하여 이들을 연구(?)해 보기로 했다. 바야흐로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열역학 제2법칙' 수준의 정확도를 가지는 만큼, 나는 학자의 자세로 이들의 특성을 관찰하고 탐구했다. 내 연구의 목적은 세 가지다:


1. 재미: 재미가 없으면 이런 탐구를 할 이유가 없다.

2. 거리두기: 이들을 미리 탐지할 수 있다면, 거리두기가 그나마 수월할 것이다.

3. 구출: 이들은 가스라이팅의 대가이니만큼, 그 늪에 빠진 사람들을 구출하겠다는 사명감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자기중심형 인간'들의 보편 특징을 알아보자.




1. 일방향 공감


자기중심형 인간에겐 불리할 때마다 꺼내 드는 호신용 주문이 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 짧은 말엔 수많은 뜻이 담겨있는데,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 어쩌라고. 난 안 바꿀 거니까 네가 맞춰. 왜냐고? 난 안 바꿀 거니까!' 이 말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불쾌하지만, 진짜 소름 돋는 지점은 따로 있다. 바로 이 말을 하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그 치명적인 뻔뻔함이다. 이들은 이 발언이 얼마나 폭력적인지조차 모른다. 그걸 깨닫기엔 이들의 공감 능력은 한없이 빈약하다.


이 사람들도 입으로는 공감을 말한다. 심지어 '나는 너무 감정을 잘 느껴서 힘들다'라는 식으로 칭얼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공감은 상대와 주고받는 쌍방향 공감이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기분에 맞춰줘야 하는 일방향 공감이다. 이들의 전두엽은 공감이 호혜적이어야 한다는 기본 원리를 무시한다. 오로지 자기 기분만이 세상의 중심이고, 자기 감정만이 세상의 잣대이다. 그래서 자기 기분에 호응하지 않는 사람을 공감 능력이 모자란 사회 부적응자로 간주한다. 이들에게 공감이란, '오직 내 기분만을 위해 세상이 움직이는 것'이다.


누군가 이들의 언행을 그대로 되돌려주면, 이들은 오랜 기간 정신적 학대라도 당한 사람처럼 반응한다. 거울 치료조차 불가능한 모습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 어안이 벙벙하다. 사실 이들의 휘황찬란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보기 위해 그 언행을 되돌려줄 필요도 없다. 단지 기분에 맞춰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풍파를 겪은 듯한 '자발적 피해자'를 볼 수 있다. 이들은 결코 주먹을 날린 후 가드를 올리지 않는다. 자신은 절대로 상처받을 수도, 공격당할 수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상처 주고 공격할 수 있는 절대자로 군림할 수 있다. 이런 기막힐 정도로 편한 사고방식, 그저 부럽기만 하다.



2. 책임 회피


자기중심형 인간에게 책임은 코 닦고 버린 휴지만큼의 가치도 없다. 물론 이들이 공감에 대해 떠벌리듯 책임에 대해서도 입에 발린 소리를 한다. 하지만 말이라면 옆집 앵무새도 곧잘 한다. 심지어 얘는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일관성 있게 말한다. 만약 말만으로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면, 난 이미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은 위인일 것이다. 그러나 행동 없는 말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그동안의 관찰로 미루어볼 때, 이들은 자기 말에도 책임질 생각이 없으므로 일단 좋아 보이는 말은 다 하고 보는 것 같다.


만약 실천의 때가 온다면? 이들은 기분 따라 책임을 마구 내던져버린다. 그 어떤 타당한 사유도, 합리적 근거도 없다. 오로지 자기 기분만이 책임을 행동에 옮기는 절대 기준이다. 하지만 벌여놓은 일이 있기 때문에 이들 옆에 있던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책임을 떠안게 된다. 그 와중에도 주변 평가엔 지독하게 예민해서 논문이라도 쓸 기세로 변명을 한다. 그런 구질구질한 에너지로 책임을 다했으면, 처음 기대보다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나면 꼭 남 탓을 한다. 이들의 주변만큼은 신기하리만치 심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난 이들이 단체 활동에서 번거로운 일을 자처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거나 재미있는 일만 콕 집어서 즐긴 후, 뒷정리와 같은 번거로운 일은 당연하단 듯이 무시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타인의 평가는 목숨보다 소중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영양가 없이 기웃거리며 '퍼포먼스 노동'을 한다. 게다가 말은 또 많아서 얼핏 보면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작 들숨과 날숨 외엔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무임승차가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라는 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어쩌면 그 요란하디 요란한 '퍼포먼스 노동'은 치밀하게 계산된 쇼일 수 있다.



3. 규칙 무시


자기중심형 인간에게 규칙은 일종의 특혜나 다름없다. 모두가 규칙을 지킬 때 이를 교묘히 어겨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에게 시간 약속이란 남에게 일을 떠넘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제시간에 도착한 사람들이 일 처리를 어느 정도 해놓으면, 그제야 스리슬쩍 합류해 마치 처음부터 있었던 양 호들갑을 떤다. 그럼에도 이들은 너무도 자기중심적인 나머지 아무도 자신의 폐단을 모를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나는 연구의 사명감을 안고 이들의 행태를 전부 지켜봤다. 이들이 꼭꼭 숨긴 치부를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괜히 미안해질 지경이다.


물론 이들도 미안하단 말을 한다. 하지만 그건 사회적으로 학습한 반사 작용일 뿐이다. 왜냐하면 미안하다고 말한 후, 정확히 그 미안할 짓을 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사과할 때 눈을 유심히 보면, 눈동자에 초점이 없거나 상대를 바라보지 못한다. 말투 또한 확연히 다르다. 모두가 '죄송합니다'라며 한국어를 할 때, 이들은 '제삼다'라며 제3세계 언어를 한다. 처음엔 이들도 인간이니만큼 최후의 양심 때문에 말끝을 흐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이들의 잔혹성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이들이 눈동자를 굴리며 제3세계 언어를 하는 이유는,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사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사과는 진심을 전달하는 행위가 아닌, 선심을 쓰는 행위에 불과하다.


누군가 이들의 규칙 위반을 지적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할 것 없다. 우린 '1번 항목'에서 이를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던가, 또는 이와 비슷한 말이나 제스처를 던진 후 넘어가려 한다. 아니, 넘어가면 다행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던 '좋은 사람'을 되레 힐난하고 경멸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눈물까지 흘려가며 피해자 행세를 하는 고도의 연기파 배우도 있다. 이런 '눈물 마케팅' 다음 벌어질 참극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4. 겁쟁이


자기중심형 인간은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이들에겐 도망이 밥이고 회피가 반찬이다. 타인과 갈등에 처했을 때, 이들이 대화로 해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심지어 갈등을 촉발한 주범이 자기 자신인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이들은 갈등이 생기면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돌아선 후, 상대방 잘못이라며 지독한 합리화를 반복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이들의 현실 왜곡은 진짜 현실로 굳어진다. 결국 이들의 마음속에선 자신은 영원한 피해자, 상대는 영원한 가해자로 조작된다.


반사회적 인간도 사회적 활동은 필요한 법이다. 잔학무도한 범죄자도 독방을 두려워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자기중심형 인간은 대화를 피해 달아난 뒤, 뒷담화나 SNS에 하소연하는 것으로 사회적 욕구를 해소한다. 정작 갈등 당사자와의 대화는 철저히 회피하면서 말이다. 그야말로 졸렬한 섀도복싱이 아닐 수 없다. 내 생각엔 이들 또한 은연중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을 마주하면 자기 잘못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잘못을 인정할 바엔 파렴치한 환상을 선택한다. 주먹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 뿐이어야 한다.


이들은 오줌으로 끌 수 있는 불을 한강으로도 버거운 초대형 산불로 키운다. 대화 몇 마디로 해결될 일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져 편이 나뉘고 파벌이 생긴다. 그래서 조직에 이런 부류가 단 한 명만 있어도 거긴 더 이상 팀이 아니라 정치판이다. 이들은 가스라이팅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훌륭한 '정신 방화범'이다. 그래서 이 능력을 십분 발휘해 사람들을 현혹하고 그룹을 만든다. 그 안에선 마치 잔 다르크라도 되는 양 굴지만, 그 가면을 벗겨보면 퍼렇게 겁에 질린 겁쟁이가 숨어 있다. 이들은 너무도 겁쟁이인 나머지, 현실을 대면하기보단 자신에게 속아줄 '가스라이티' 집단을 만든다.



5. 자기애 과잉과 자존감 결여


자기중심형 인간의 자의식은 마리아나 해구도 못 담을 정도로 비대하다. 동시에 이들의 자존감은 양자 현미경도 못 담을 정도로 미세하다. 두 성향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이런 자아분열에 가까운 모순이야말로 이들의 정체성이자 본질이다. 이들은 일이 잘 풀리면 자기애를 한없이 부풀린다. 마치 그 분야가 자기 등장 전과 후로 나뉘기라도 한 것처럼 '셀프 위인전' 집필에 여념이 없다. 이때 이들에게서 겸손을 찾기란 인터넷에서 진심 어린 사과문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 물론 본인 빼고 모두가 눈치채는 '과시형 겸손'은 예외다.


반면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이들은 구멍 난 자존감을 채우려 타인을 짓밟고 선다. 남을 깎아내리고 평가절하해야 자신이 덜 초라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무능과 무지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공허한 내면 탓에, 주변의 좋은 평가 없이는 정서적 독립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순간엔 반사적으로 외부 요인을 탓한다. 이런 '오토매틱 태도 전환'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강렬해서, 정말 이들에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평온한 분위기에 대뜸 찬물을 끼얹거나, 사소한 일을 생명이라도 위독한 것처럼 부풀린다.


보다시피 이들은 스스로 자기애적 최면을 걸거나 타인의 자존감에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발달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런 극단적인 양면성은 대개 3~6세 유아기에 두드러진다. 즉, 이들의 나르시시즘적 면모 이면엔 제때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가 있는 셈이다. 이렇듯 눈만 가리면 세상이 사라진다고 믿는 아이처럼, 이들도 유아기적 자기중심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얼굴만 늙어버린 아이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연구하면서 종종 연민의 늪에 빠지기도 했다. 때로는 연구자의 중립성마저 저버리고 손을 내민 적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정서적 격리 대상'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들의 '유아기적 퇴행 질환'은 전염성이 강하다.




여러분은 좋은 사람들이다. 물론 합리화도 하고, 책임을 회피하기도 하며, 겁쟁이 같은 면모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성향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기중심형 인간은 차원이 다르다. 이들에게 이런 성향은 간헐적 표출이 아닌 정체성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이런 성향이 자주 드러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심호흡부터 하고 멀리서 지켜보길 권한다. 이들의 공허한 마음은 블랙홀과 같아서 마음을 주는 순간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 버린다. 다행히 돌아올 수는 있겠지만, 이미 여러분의 마음은 분자 단위로 분해된 후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러분 중 몇몇은 너무 좋은 사람인 나머지, 이들을 교화하거나 설득하려 할 수도 있다. 단언컨대, 이들에겐 그 어떤 교화도 설득도 통하지 않는다. 인류애의 아이콘 마더 테레사가 환생해도 손쓸 도리가 없다. 자기중심형 인간들은 여러분의 선의를 빨아먹으며 텅 빈 인간성을 유지한다. 이들과 함께 있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인류애가 바닥나버린 여러분 자신만 남게 된다. 그러니 '인류애 흡혈귀'를 잘 구분하고 정서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여러분의 다정하고 다채로운 마음은 여러분처럼 좋은 사람과 나누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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