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유대 광야를 만나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탐방을 마치고 달려간 다음 장소는 사해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 쿰란 (Qumran). 유대 광야와 사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쿰란은 약 2,000년 전 기록된 '사해 사본'이 발견된 유적지로 이는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이라고 평가받는다고 한다. 대학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강의에서 들어봤었던 사해 사본이 발견된 곳을 직접 가본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쿰란에 도착! 사해 사본이 발견된 쿰란 동굴은 현재 쿰란 국립공원 (Qumran National Park)으로 보호되고 있어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쿰란 동굴이 세상에 발견된 사건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러간다. 1947년 초, 무함마드 에드디브라는 어린 베두인 목동이 쿰란 절벽 근처에서 양을 찾다 혹시나 절벽의 동굴로 들어갔을까 하여 동굴 안쪽으로 작은 돌멩이를 던졌다고 한다. 그런데 동굴 안에서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곳에서 소년은 항아리에 담긴 오래된 가죽 두루마리들을 찾아내게 된다. 이후 이 두루마리들이 골동품 시장에 나오게 되면서 '사해 사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감정을 통해 이것이 2,000년 전 기록된 성경 사본임이 밝혀지며 대대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대대적인 발굴을 통해 총 11개의 동굴을 추가로 찾아내게 되었고, 그 안에서 수만 개의 사해 사본 조각들을 수습하게 되었다고 한다.
쿰란 국립공원 안 전망대는 데크로 되어있어 편하게 걸어 다니며 구경할 수 있었다. 절벽에 뚫려있는 구멍들이 바로 쿰란 동굴들로 저 곳곳에 사해 사본이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총 11개의 동굴 중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제4동굴인데, 이곳은 1952년 베두인들에 의해 발견된 곳으로 이곳에서만 15,000개 이상의 사본 조각들이 나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찾아진 사해 사본은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1세기 사이에 쓰인 완전한 히브리어 구약성서 사본으로, 이사야서를 포함해 에스더서를 제외한 구약성경의 모든 사본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해 사본은 오늘날의 히브리어 성경과 약 95%가 일치해 성경의 정확성을 입증해 낸 말 그대로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
쿰란 동굴들 구경을 마친 후 다음으로 향한 곳은 유적지 내부의 전시 공간. 쿰란은 2,000년 전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한 분파인 에세네파 사람들이 쿰란공동체로 은둔하며 종교적인 공동생활을 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에세네파 사람들은 철저히 종교적인 생활을 하며 성경을 필사하는 일에 몰두했는데, 주후 68년 로마가 쿰란을 공격할 때 자신들이 필사해 둔 성경 두루마리들을 쿰란 주변의 동굴들에 꽁꽁 숨겨 놓은 것이 바로 오늘날의 '사해 사본'인 것. 내부 전시 공간에서는 에세네파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한 그림과 유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정교한 고대 히브리어 서체들로 쓰인 두루마리 사본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흥미로웠던 쿰란 국립공원 탐방을 마무리한 후 우리가 향한 곳은 마사다 국립공원(Masada National Park). 이스라엘의 중요한 역사가 담겨있는 마사다 요새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쿰란 국립공원 탐방 마무리 후 빠르게 달려간 덕분인지 우리는 마지막 케이블카 마감 전에 도착하여 다행히 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늦은 점심을 30분 안에 해결한 후 케이블카를 타고 마사다 유적으로 향하는 길, 케이블카 위에서 '뱀의 길'을 바라보자니 만약 케이블카를 타지 못했다면 도보로 1시간을 넘게 걸어 올라왔어야만 했을 뻔한 사실에 순간 눈앞이 아찔(?).
히브리어로 '요새'를 뜻하는 마사다는 이스라엘 유대 사막 동쪽 끝 거대한 바위 절벽 위에 세워진 고대 요새이다. 로마 제국에 끝까지 저항했던 유대인들의 가슴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마사다의 첫 시작은 기원전 37~31년경 헤롯 대왕의 피난처이자 별궁으로 세워졌다. 이후 서기 70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함락될 당시에 이곳에 약 960명의 유대인 저항군이 피신하며 로마군에 대항하였지만 결국 3년 후 로마군에 의해 요새가 함락하였고, 함락 직전 유대인들은 로마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며 전원 집단 자결을 선택하게 되는 마지막까지 항전했던 이스라엘의 위대한 역사가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곳, 마사다 요새.
이곳이 바로 마사다 요새를 함락하기 위해 로마군이 만들었던 공성 경사로(Roman Ramp). 현재는 2,000년의 세월이 흘러 비바람에 많이 깎였지만 그래도 육안으로 그 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마군은 마사다 요새를 함락하기 위해 주변의 거대한 바위를 사용해 약 196m 길이의 경사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경사로가 완성된 후에는 그 위에 22m 높이에 공성탑을 쌓았고, 망치로 성벽을 지속적으로 타격해 구멍을 내는 것을 통해 결국 마사다 요새의 성벽을 함락시키게 된다. 유대 저항군은 필사적으로 로마군의 진입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하였고, 그렇게 로마군이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직전 밤 960명의 유대 저항군은 자결을 선택한다.
마사다 요새에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면 보이는 로마군 진영의 유적. 저렇게 사각형 모양으로 된 로마군의 진영은 진영과 진영을 연결하여 요새를 360도로 둘러싸며 유대 저항군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엄청난 압박을 주었다고 한다. 마사다 요새 안에서 로마군들이 자신들을 잡기 위해 포위하고, 경사로를 쌓고, 공성탑을 쌓는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유대 저항군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렇게 이스라엘의 숭고한 역사를 기억하며 마사다 유적 탐방을 마무리했다.
마사다 유적 탐방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보는 성경 이야기의 단골 배경 유대 광야(Judean Desert). 유대 광야는 구약에서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숨어 지냈던 곳이자 신약에서는 세례 요한이 회개를 선포했던 곳이다. 어둑어둑해진 엔게디와 유대광야를 지나며 함께 '광야를 지나며'를 들었다. 늘 나에게 있어 '광야'는 그저 척박하고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마주한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온전히 채워질 수 있는 그 어느 곳보다 충만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직접 광야를 눈에 담으며 새로운 깨달음도 가질 수 있어 너무나 감사했던 마음을 남겨보며, 의미 있었던 이스라엘 5일 차 탐방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