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일명 ‘윤달쏘’로 유명한 이 작품은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기에 줄곧 알고 있었던 작품으로, 재연이 올라오면 꼭 봐야겠다고 기다리고 있던 작품. 그렇게 2025년, 윤동주 시인 서거 80주년을 맞아 무려 4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처음에 창작 가무극이라 해서 뭔가 했는데, 뮤지컬의 형태를 띠면서도 한국적인 소재와 정서를 담아내고 재해석한 공연이라고 한다. 창작가무극의 궁금함과 무대로 만나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술의 전당으로!
[시놉시스] 일본이 국가총동원법을 조선에도 적용해 한민족 전체를 전시총동원체제의 수렁으로 몰아넣던 1938년. 북간도에서 그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벗이자 동지인 사촌 송몽규와 함께 경성으로 온 청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서 강처중, 정병욱 등과 함께 외솔 최현배 선생의 조선어 강의를 들으며 우리 민족 문화의 소중함을 배워간다. 달빛 아래서 시를 쓰며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던 윤동주. 하지만 혼돈의 시대 속에서 역사는 윤동주에게 스승과 친구들, 우리말과 우리글, 자신의 이름과 종교 등 많은 것을 빼앗아 가고 참담한 현실에 몸부림치던 윤동주는 절필과 시 쓰기를 반복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1942년 3월, 문학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한 그는 송몽규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오늘의 캐스트 보드. 이번 2025년 칠연에 만나는 ’윤동주‘는 김용한 배우가 맡았는데, 김용한 배우는 예전에 뮤지컬 <화랑>에서 기파랑 역으로 만났었던 적이 있다. 그날 뮤지컬을 보고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었는데, 짧게 대화도 나누고 같이 사진도 찍었었던 좋은 기억이 있어 그 후 다른 작품에 이름이 보이면 응원하고는 했었다. 또 다른 주요 역할인 송몽규, 강처중, 정병욱, 이선화 역을 맡은 배우분들은 처음 뵙는 배우 분들로 서울예술단의 단원분들이라고 한다.
이번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는 모든 관람객들에게 윤동주 시인의 작품이 담긴 ’시와 산문 10편 필사북‘을 증정했는데, 공연에서 나오는 작품들로 되어있어 공연 전 작품들을 읽어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온라인 프로그램북을 다운로드하여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덕분에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 좋았다. 프로그램북에서 읽은 내용들이 무대에서는 어떻게 표현될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극장 입장.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는 1막과 2막으로 진행이 된다. 1막은 어두운 분위기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 시인의 <팔복>을 읊는 것으로 시작이 되고, 연희전문 재학시절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저 시를 쓰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인데, 시대는 청년 윤동주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한 줄 시에 담고자 했던 나의 꿈이 부끄러운 고백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이어지는 2막은 윤동주 시인의 일본 유학생활 이야기와 옥중 이야기로 진행이 되는데, 2막의 여러 장면들 중 가장 좋았던 부분은 <별 헤는 밤>. 사실 이 시를 떠올릴 때면 고요한 밤에 읊어지는 시의 느낌이었는데, 무대 위 울부짖으며 읊는 시가 윤동주 시인의 괴로움을 너무 잘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구절인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라는 부분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어 한동안 먹먹했던 마음.
내가 앉았던 자리는 3층이라 앉으니 약간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느낌에 살짝 당황했지만, 앞열에 아무도 앉지 않아서 그 부분은 좋았다. 또한 무대 앞 안전바로 인해 무대가 방해받지 않을까, 무대와 먼 느낌이라 배우들 얼굴이 작게 보이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다. 가끔 배우들이 무대 앞으로 나올 때는 약간 가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고, 배우들 또한 생각보다는(?) 그렇게 멀어 보이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 무대연출이 새로 바뀌면서 반사되는 재질로 바뀌었다는 것에서 장단점을 느꼈다. 우선 장점이라 하면 밤하늘, 비 오는 장면 등이 바닥에 비치면서 좀 더 넓은 공간의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단점으로는 조명의 빛이 반사돼서 시야와 몰입을 방해한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또한 전쟁 부분이 그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 내용을 배경으로 깔고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더했으면 좋았겠다 싶었던 부분도 있었다.
여러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만나는 윤동주 시인과 시인의 시는 역시나 좋았다. 시를 쓰고자 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끊임없이 고뇌하고 한평생을 참회했던 시인에게, “아픔을 배우고 청춘을 바치고 써 내려간” 당신이 남겨준 시들은 지금의 나에게, 우리에게 “메마른 이 세상 단비” 같은 위로가 되어주고 있으니 당신의 시를, 그리고 자신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동주야, 듣고 싶다. 네 시!”
세상이 우리에게 건넨 거친 농담을 어떻게든 웃어넘기려 했던 젊은 날을 한 줄 시로 담으려던 청년들의 잉크가 물들인 푸른 손을 누가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