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빛, 나의 악몽.
3월 17일, 해진의 편지일에 맞춰 찾아오려고 오랫동안 서랍에 보관하고 있었으나 2025년 10주년 기념공연 캐스트가 공개가 되고 다시 한번 이규형의 해진, 일명 '뀨해진'이 팬레터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뮤지컬 <팬레터>는 2021년 12월 10일부터 2022년 3월 20일에 4번째 공연으로 돌아왔었는데, 이 후기는 2월 9일에 만났었던 아주 오래된 <팬레터> 후기.
내가 뮤지컬 <팬레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우연히 듣게 된 이규형의 '해진의 편지' 넘버였는데, 그 넘버로 인해 2022년 뮤지컬 <팬레터> '사연' 공연을 볼 수밖에 없게 되었더랬다. 사연, 즉 이미 네 번째로 올라온 작품이었기에 인기가 엄청났던 작품이라 표를 예매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이규형의 공연 예매를 성공하여 행복한 마음으로 코엑스 아티움으로 출발! 도착해서 만난 포토존은 마지막으로 세훈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해진이 생각나게 만들었던 곳으로 벌써부터 마음이 찌잉.
내가 만났던 뮤지컬 <팬레터> 캐스트는 이규형, 박준휘, 강해인, 박정표, 윤석현, 김태인, 그리고 송상훈. 초연부터 계속 김해진 역할을 했어서 그랬는지 개막 하루 전에 추가 캐스팅 되었던 우리의 '뀨해진'. 나는 이규형이 부르는 뮤지컬 <팬레터> 넘버 중 '해진의 편지'를 듣기 위해 왔긴 했지만, 오늘의 캐스트들을 보니 더욱더 극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오늘의 문인들'이라니, 극과 너무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시놉시스] 1930년대 경성. '세훈'은 카페에서 쉬던 중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히카루'라는 죽은 여류작가의 소설이 출간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알려지지 않았던 그녀의 진짜 정체까지 밝혀진다고 한다. '세훈'은 구치소에 갇혀있는, 문인들의 모임 '칠인회' 멤버이자 소설가인 '이윤'을 찾아가 그 출간을 중지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윤'은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으면 그럴 수 없다고 말하며, '히카루'의 애인이었던 소설가, '김해진'이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까지 품에서 꺼내 자랑한다. '세훈'은 자신이 그 편지를 꼭 봐야 한다고 말하며, '히카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워낙 창작뮤지컬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160분 동안 푹 빠져서 봤던 뮤지컬 <팬레터>. 1930년대를 배경으로 '이상'과 '김유정', 그리고 '구인회'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극으로 우리나라를 배경이라 무언가 몰입이 더 잘 되었던 것 같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해진은 편지로 이야기를 나누는 히카루라는 신원미상의 인물에게 사랑에 빠져버리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답장을 받지 못하면 무너져 내리는 등 히카루에 대한 감정이 사랑에서 집착으로 점점 변해가기 시작한다. 글을 쓰는 것에 미쳐가는 것과 동시에 세훈과 히카루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등 해진의 감정의 흐름을 보며 과연 그가 사랑한 사람이 히카루인지, 글을 쓴 세훈인지에 대해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극적인 감정의 변화가 '해진의 편지' 넘버에서 "그게 누구라도, 편지의 주인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로 마무리 지어지는 것을 보며 결국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히카루도, 세훈도 아닌 '글' 자체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사실 3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뮤지컬 <팬레터> 후기를 남기는 것은 '해진의 편지'를 남겨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뮤지컬을 보기 전부터, 그리고 보고 난 후로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듣는 넘버인 '해진의 편지'는 매년 3월 17일이 되면 떠오르는 곡. 감사하게도 2018년 콘텐츠제작사라이브에서 뀨해진 버전으로 MV를 남겨주는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고 한다. 10주년 기념 공연이자 다섯 번째 공연이 이번 12월 5일부터 시작되는데, 아직 안 본 분들이 계시다면 꼭 가서 문인들을 만나보시길 바라는 마음을 남겨보며 늦은 뮤지컬 <팬레터> 후기는 여기서 끝!
"세훈아 나는 날로 내 몸이 꺼진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눈이 어두워서 짧게 적는다."
모든 일은 나로부터 비롯되었다
잘못된 환상에서 깨고 싶지 않아서
언젠가부터 깨달았다 어렴풋하게나마
내 주변을 감도는 그녀와 같은 바람을
그녀를 닮은 섬세함과 떨림
그녀와 다른 다정함과 순수
그 편지를 잡고 있어야 살 것 같아서
글자로 만든 성 안에서 그래 외면한 채
"결국 우린 사랑의 모든 형태에 탐닉했으며
사랑이 베풀어 줄 수 있는 모든 희열을 맛보았다."
나보다 훨씬 용감한 너를 보고
나도 한 걸음을 겨우 떼어
여기 편지와 원고 받아 주면 좋겠다
그녀에게 주고 싶던 꽃과 함께
새삼스레 말이 맴돈다
너의 말들로 그때 내가 버티었다
그게 누구라도 편지의 주인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결같이 너의 답장을 기다리마
삼월 십칠일, 해진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