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가 요즘 너무 뜸했죠. 브런치에 자주 못 오는 사이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두둥 "삼풍 생존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드디어 6월 도서출판 푸른 숲에서 책이 나옵니다. 초고를 형편없이 썼기에, 그간 책상 앞에 붙어 퇴고를 죽어라 했습니다.
책은 본명이 아니라 '산만 언니'라는 필명으로 나옵니다. 물론 제 이름보다 산만언니라는 닉네임이 유명하기도 하지만, 글 속의 나와 글을 쓰는 나를 분리하기 위한 심산이기도 합니다. 글을 다 쓰고 보니 책 속의 제가 실제의 나 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더라고요. 그 안에서 저는 언제나 올바른 결정을 하려 애쓰고 오늘보다 내일 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애석하게도 글 밖에서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며 사소한 일에도 따지기 좋아하고, 매사 '그러려니'하고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라서요. 게다가 여태 밝히지 못한 부끄러운 속내도 새까맣게 많고요. 이런 이유에서 책은 필명으로 나옵니다.
또 두 번째 소식은 지난 3월 제가 운명처럼 진도 믹스 한 마리를 입양했다는 것입니다. 이 친구 이름은 복주입니다. (복주를 구한 언니들이 지은 이름)
맨 왼쪽 아이가 우리 복주예요. 아가 때부터 이마에 근심 줄이 있는 꼬마 녀석이지요.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형제들과 함께 유기되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 남아 즈이 집에 온 녀석입니다.
실은 얘 데려오기 전에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복주 임보 기간 끝날 때까지 저 보다 더 환경 좋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제 기대수명과 이 아이의 기대수명이 일치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플랜 B로 조카 2호 백업요원으로 만들어 놓고 복주 데려왔습니다. 정말이지 복주 입양은 제겐 이십 년 다닌 회사 때려치우는 거보다 더 큰 결심이었습니다.
물론 현재로서는 매우 만족합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이 녀석 때문에 전 보다 많이 걷고 자주 웃으니까요. 복주 성격은 사진으로 보시다시피 상당히 깨 발랄합니다. 그런데 견생 6개월 동안 거처를 많이 옮겨서 그런지 첨에는 제게 곁을 잘 안 주더라고요, 잠도 식탁 밑이나 서랍장 밑에 들어가서 자고, 그러다 딱 3주 지나니까 제 발치에 와서 자더라고요. 그러더니 요즘은 제가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해합니다.
지금은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거 외에 모든 외출을 복주 눈치 보며 합니다. (보통 시집살이가 아니네요)
이 친구는 진도 믹스예요, 시고르 자브종(시골잡종) , 하지만 이 친구처럼 똑똑한 개 살면서 처음 봅니다. 본가에서 나름 품종견 여럿 키워봤는데 차원이 달라요. 6개월 차 강아지가 어지간한 의사소통이 됩니다. 정말 신기해요. 게다가 건강하고요. 역시 스트릿 출신은 뭔가 달라요.
이 녀석 오고 나서는 매일 아침저녁 강제로 산책을 2시간씩 총 네 시간을 집 근처 산으로 강으로 달립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던 제가 요즘 날마다 만보를 우습게 넘깁니다. 덕분에 밤에는 지쳐 쓰러져 자요ㅎ, (신경안정제도 전보다 덜 먹고요)
사실 복주가 잘 때 저는 일 해야 하거든요? 그래야 이 친구 사료값이라도 벌지요, 아 근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조만간 발란스 찾아서 복주도 잘 키우고 글도 열심히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하겠습니다.
요즘 얘 보면서 이런 생각 합니다. "기적이 별거냐, 끝끝내 살아남은 너와 내가 함께 사는 게 기적이지."
12킬로짜리 생명이 주는 행복을 느끼며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랑의 물리학"이라는 김인육 시인의 시도 다시 한번 떠 올립니다. (feat. 드라마 도깨비)
하긴 가벼운 눈송이 하나에도 마음이 몽글거리는 게 사람인 것을, 우린 자주 잊고 사는 듯하네요.
복주는 이번 5월에 견생 7개월 차 접어들었고, 소위 말하는 개춘기가 시작됐습니다. 덕분에 매너교육 사회화 교육 빡세게 시키고 있습니다. 이 시기 잘못 넘겨 이웃에 민폐가 되는 개로 키울 수는 없으니까요.
더 많은 복주 이야기는 제 인스타에 있으니 다들 구경 오세요!!!
오는 6월부터는 다시 각 잡고 브런치 연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기존에 연재 중인 글도 전부 엎어 제대로 써 보려고 해요. 아마 앞으로도 저는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우리가 마땅히 주목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쓸 것 같습니다. 차마 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이런, 어쩌다 근황 보고와 안부인사가 길어졌네요, 암튼 저는 이다음 푸른숲에서 나오는 책 디자인이 결정되고 예판 일 확정되면 다시 오겠습니다.
그동안 새 글도 못 올렸는데, 여전히 들려주셔서 마음 눌러 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것 늘 감사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또 찾아올게요. 늘 건강하세요!!!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