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주를 키우고 나서야 개도 차멀미를 한다는 걸 알았다. 전에 본가에서 시츄니 요크셔니 키울 땐 전혀 겪지 못했던 일이었다. 녀석은 차에 타면 일단 거품을 물고 침을 미친 듯이 흘렸다. 그다음 먹은 모든 걸 토했다. 무려 차에 그냥 타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복주는 침을 흘렸다.
동물병원 가 의사 선생님께 이 문제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복주 월령(5개월 무렵)에 개들이 멀미하는 건 흔한 일이라며 멀미약을 처방해 주셨다. 하지만 녀석은 약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다시 병원에 가 멀미약이 잘 안 듣는다 하자 선생님께서는 “그러면 어쩔 수 없다. 사람도 차멀미가 끝내 안 고쳐지는 사람이 있듯 개 역시 마찬가지다.‘ 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더 이상 병원에서 복주에게 처치해 줄 의료 서비스는 없다는 얘기였다. 순간 하늘이 노랬다.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평생 멀미하는 개와 산단 말인가. 일단 병원부터 바꿨다. 그러자 새로운 선생님께서는 복주가 물리적 문제로 멀미를 하는 게 아니라. 심리적 문제로 멀미하는 것 같다 하셨다. 녀석이 “차”라는 공간이 낯설고 두려워 멀미를 한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시간을 갖고 천천히 복주가 차에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자주 하면 좋아질 거라 했다. 그 얘기를 하는 선생님 뒤로 후광이 비쳤다. 할렐루야. 희망이 있구나.
그때부터 나는 매일 복주를 데리고 차 타는 연습을 했다. 개를 안정시키기 위해 일단 차에 있던 캔넬부터 치웠다.(* 유사시 캔넬이 반려견에겐 훨씬 안전하다). 대신에 반려견 카시트를 준비해 복주를 밖이 보이는 조수석에 앉히고 운전하며 차가 신호에 걸리면 복주와 눈을 맞추고 진정하라고 복주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그냥 차만 탔다 그냥 내리고 그다음엔 시동 걸고 내리고 다음엔 주차장 한 바퀴 동네 한 바퀴 이런 식으로 매일 같이 차 타는 시간과 거리를 꾸준히 늘렸다. 이 시기엔 무엇보다 복주를 차에 태우면 무조건 복주가 좋아할 만한 데 갔다. 동물병원 같이 녀석이 싫어할만한 장소는 멀어도 걸어서 가고 동네 반려견 놀이터 같이 복주가 좋아하는 장소엔 갈 땐 가까워도 차에 태워 갔다.
이렇게 얼마간 지속적으로 연습하자 우리 복주의 증세는 점차 좋아졌다. 녀석이 더는 침을 흘리지 않게 되자 안전 문제를 고려해 이 친구의 카시트를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옮겼다. 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산책할 때 복주의 '소음 둔감화 훈련'도 병행했다. 둔감화 훈련이라 말 하니 뭐 대단한 걸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그저 산책 중에 복주랑 함께 도로에 앉아 가만히 오가는 차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 석 달쯤 했을까? 녀석의 증세는 눈에 띄게 호전 됐다. 지금은 뭐 차 타고 전국 팔도 못 가는 데가 없다.
다행히 둘째인 해탈이는 멀미를 안 한다. 이 녀석은 아마 전쟁 통에도 저 졸리면 어디서든 배 까고 잘 애다. 세상 일에 큰 관심 없다. 길 가다 비닐 봉다리 하나만 날아도 복주는 기절 초풍하는데 해탈이는 그런 거 없다. 이럴 때 보면 “해탈이‘ 라는 이름을 잘 지어도 어지간히 잘 지었구나 싶다.
당시엔 몰랐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복주의 불안증을 고치는데 내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녀석에게 적용한 치료방식은 내가 불안증을 심하게 겪을 때 전부 해 본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때 내겐 믿을 만한 사람이 나를 안심시켜 주는 게 절실했다. 누군가 내게 확신을 주길 바랐다. '괜찮다. 마음 놓아라. 너는 안전하다. 네겐 더 이상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같은 말들로 말이다.
내 경우엔 그게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지금은 사라진 방배동의 한 상담센터 원장님이 그랬다. 병증이 깊어 늘 불안에 떨던 나를 이분들은 진정시켰다. 괜찮다고, 너는 걱정할 게 없다고, 다 잘 될 거라고, 너는 반드시 좋아질 거라고. 그러니 안심하라고
또 두 번째 치료법은 정면돌파였다. 붕괴사고 이후 나 역시 한 동안 복주처럼 지하철을 타면 오들오들 떨었다. 또 어두운 데서 사고를 당해 그런가 한동안 지하로 내려가는 게 그렇게나 무서웠다. 게다가 열차가 들어올 때 부는 바람은 또 어찌나 싫은지. 그래서 사고 직후엔 가까운 길도 빙 돌아가기 일쑤였다.
취업이 안 되는 요즘 친구들이 들으면 까무러칠 노릇이지만 취직해야겠다 생각했던 24살에 나는 무조건 버스가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에만 이력서를 넣었다. 그래서 버스만 또 줄곧 타고 다녔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하철을 피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서울엔 버스 전용도로가 없어 비가 오고 눈이 내리면 어디든 버스로 제시간에 갈 수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아쉬운 내가 또 적응해야지. 그래서 그때 나도 복주처럼 훈련했다.
처음엔 지하철 역사에 내려가서 지하철은 타지 않고 건너편 출구로 그냥 나오는 것이다. 그다음엔 가까운 거리를 가 보고 조금 더 용기를 내 몇 정거장 더 그다음엔 회사까지 그렇게 매일 회사에 갈 때마다 연습했다. 그러자 어느새 나 역시 복주처럼 좋아졌다. 덕분에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하철을 탄다. 그때는 새삼스레 고생하는 것도 싫고 마음도 참 힘들었는데 이렇게 개한테라도 내 경험이 도움이 되니 역시 악몽이라 할지라도 세상에 버리는 경험은 없구나 싶었다.
사실 나는 복주가 가지고 있는 불안의 서사를 모른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고 현재다. 그 시절 기억이 복주를 불안하게 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녀석은 불안하면 안 된다. 앞으로도 나는 최대한 녀석의 불안도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이 집에서 가장 문제 되는 건 나다. 막말로 나는 개들도 돌봐야 하지만 나 자체도 돌봐야 한다. 게다가 병의 예후나 증상도 셋 중에 제일 나쁘다. 여전히 나는 정신과 문턱이 닳도록 병원을 드나드는 중이다. 녀석들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는데 여전히 나는 하루도 약 없이 잠들지 못한다. 물론 머리는 안다.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일 뿐이라는 걸. 그런 일은 내게 다시 있을 수 없다는 걸 그러니 안심하고 살아도 된다는 걸. 하지만 무의식은 다른가 보다 늘 긴장상태다.
해서 요즘의 나는 마음이 힘들 때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서래(탕웨이) 대사를 자주 떠올린다. 남편이 죽었는데 어떻게 계속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영화에서 형사로 나오는 해준(박해일)이 묻자 간병을 하는 서래(탕웨이)에게 묻자 서래가 대답한다.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은 묘하게 내게 울림이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나도 모르게 좀처럼 현관문을 밀고 나가고 싶지 않을 때에도 극 중 서래를 떠올리며 과거는 현재의 나를 망칠 수 없다. 오늘은 오늘의 개 산책을 하자. 하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준비운동을 하고 운동화를 신과 개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 걷는다. 그럼 왠지 모르게 오전의 나 보다 오후의 내가 아주 조금이라도 괜찮아진 것 같아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니 우울할 땐 당신도 걸으시길. 물론 개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