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개들 이야기
서울에서 포천으로 오려면 늘 공동묘지를 지나온다. 경사가 오르락내리락 경사가 제법 있어 멋모르는 초보가 잘못 오르면 낭패를 겪을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이 길이 지름길이라 성격 급한 나는 낮이고 밤이고 이 길로만 다닌다. 해 떨어지면 다른 차들은 대부분 우회하지만 나는 그런 거 없다. 무조건 직진이다. 그깟 귀신 따위 알게 뭔가.
전에 말했다시피 이곳엔 개가 많이 유기된다. 지난번엔 명절이 끝난 후 중형견 크기의 하얀 개가 버려졌다. 비숑이었다. 잠시 차를 세우고 어쩌면 좋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가던 길을 마저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 상황에 개 세 마리는 무리다. 지금 키우는 개도 번번이 오빠네 맡기는 처지인데 무슨 염치로 여기에 한 마리를 더 얹는가. 안 될 일이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그 친구가 눈에 밟혀 괴로웠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그 친구 안부가 걱정돼 혼났다. 매정함의 대가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동물단체인 (사)동물자유연대가 진행한 조사 결과(2010)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죽을 때까지 키울 확률이 12%라고 한다(10년도 넘은 조사 결과지만 지금까지도 인용되고 있다). 반려인 중 열에 아홉은 기르던 개나 고양이를 도중에 누군가에게 주거나 내다 버린다는 얘기다. 놀라운 숫자 아닌가. 열에 아홉이라니. 농림축산검역본부의 '2020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에는 약 13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버려졌다.
전에도 남이 버린 개를 키운 적이 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알고 지낸 한 언니가 우리 집에서 개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는 찾아와 두 손을 모으고 자기네 개를 잠깐만 맡아달라고 애원해 며칠 맡아 줬더니 그 개가 죽을 때까지 찾아가지 않았다. 그 친구 이름은 몽이였고 순하디 순한 시추였다.
사정은 이러했다. 남자친구랑 둘이 연애할 때 혼자 사는 언니가 생일 선물로 받은 개인데 그 후 둘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보니 털북숭이 개는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었다. 그래서 애가 태어난 후로는 개를 온종일 목욕탕에 가둬 놓고 있다고 헸다. 한데 한 동안 목욕탕에서 잘 지내더니 요즘엔 개가 밤낮없이 문을 긁고 울어 가족 모두 밤에 잠을 설친단다. 그러니 며칠만이라도 자기네 개를 좀 봐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이해를 구하려는 듯 친근한 웃음을 지으며 너도 곧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내 마음 알 거야. 했다. 그렇게 나는 개를 건네받았고 그 후로 나는 몽이가 우리 집에서 죽을 때까지 일부러 그들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물론 그들 역시 개의 안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 집에 왔던 몽이의 하얀 발등은 욕실 문에 전부 찍혀 피딱지로 도배가 돼 있었다.
그 후 우리 집에서 십 년 넘게 살았던 몽이의 마음을 나는 모른다. 그들이 그리웠을지, 어쨌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평소 몽이의 성격을 미루어 보면 그들을 다시 만나도 꼬리 치며 반겼을 거다. 바보처럼.
종종 어르신들이 개는 평생 자라지 않는 아이라고 한다. 아마 개 하는 짓이 죽어라 부모를 찾는 돌쟁이 아이들 같아서 그러지 싶다. 기억할지 모르겠다. 몇 해 전 겨울 양부모에게 맞아 죽은 정인이도 그랬다. 생전 마지막 비디오를 보면 그렇게 부모가 때리고 괴롭혔는데도 양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정인아하고 부르자 두 팔을 벌리고 그에게 아장아장 걸어가 안겼다. 개도 마찬가지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애나 개처럼 약한 생명에게 양육자의 품은 세상의 전부다.
심지어 몇 해 전엔 파양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은 개 링고 이야기가 화제 된 적 있다. 한 살 깃 지난 개 링고는 짖고 저지레(집을 어지르거나 늘어놓는 일)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와 함께 파양 당했다. 링고는 보호소로 다시 돌아와 (아마도 충격을 이기지 못해서인지)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아마 이 얘기를 개를 키우기 전에 들었더라면 나 역시 개의 죽음에 사람들이 지나치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개를 직접 키워 보니 아니다. 다르다. 특히 링고와 같은 품종인 복주(진도믹스)를 이해하고 보니 링고의 죽음이 이해된다. 온종일 나만 기다리는 복주를 보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무나 잘 따르고 성격 좋은 해탈이도 조카네 맡기면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리느라 현관에 가 있는다 한다. 그러니 복주는 말 할 것도 없지.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울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사람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개는 인형이 아니다. 가지고 놀다 싫증 나면 버리는 장난감은 더더욱 아니고.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면 그 순간 가족이 되는 거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하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 말이다.
그래서일까 개인 구조자나 몇몇 동물보호단체에서 임시로 보호하고 있는 개를 입양하고자 하면 그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놀라곤 한다. 대개 4인 가족이 우선이고 경제력을 증명해야 하며 주거공간을 확인받아야 하고 동거 중인 커플보다 부부가 우선된다. 처음 복주를 데려 올 때 이들의 높은 입양 심사가 다소 황당했다.
한데 내가 직접 개를 키우다 보니 왜 다들 이렇게 높은 입양 기준을 설정하는지 알겠다. 파양률을 낮추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들의 요구 조건은 어느 하루에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간의 파양 이유를 근거로 성립된 것이다. 그러니 개를 구조해 보내는 사람은 이왕이면 끝까지 개를 포기하지 않고 키워줄 입양자를 최선을 다 해 찾는 것이다. 파양은 개한테도 씻지 못할 상처로 남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주변에 반려견을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려서 부모 형제와 떨어져 눈도 못 뜬 체 유리관에 전시돼 개를 구매하는 펫숍보다는 가까운 유기견 보호소에 가서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친구들을 만나 보라고 할 것 같다.
내 경우엔 해탈이도, 복주도 포인핸드에서 (유기견입양 관련 핸드폰 어플) 사진만 보고 입양을 결심했지만, 만에 하나 혹시 이다음에 내게 반려동물 입양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그땐 무조건 유기견 보호소에 가서 직접 개들을 만나보고 결정할 생각이다. 왜냐고? 예쁜 건 순간이고 성격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개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개를 산다. 열에 아홉은 지옥 같은 번식장과 개 유통구조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한다. 좋다. 거기까지 양보할 수 있다. 그럼 이후엔 제발 끝까지 키웠으면 좋겠다. 키우다 여차하면 버릴 생각이 거들랑 애초에 개를 사지 말자. 생명은 물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