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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 Mar 20. 2024

블루

겨울은 유독 길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쓸쓸한 계절 속 한 순간 낭만이 깃들었다. 휴대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잊히고 무뎌질 순간들을 어떻게든 담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돌아서야 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라디오 헤드의 Street Spirit가 흘러나왔다. 나는 예전부터 뭔가 우울하고 어두운 것들을 좋아했다. 너무 밝기만 한 건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슬픔과 외로움은 삶에서 자연스러운 것들이었다. 나는 그 무엇도 외면하고 싶지 않다.


인생이 외롭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언뜻 스치는 누군가의 슬픈 눈을 본다. 너도 참 외롭구나. 우리 서로 외로운 거구나. 아무 내색 없이 서로 곁에 머물다 다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거구나.


오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평온과 권태의 이 지긋지긋한 모순 속에서 나는 오늘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나의 텅 빈 마음은 어쩌면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요즘은 좀처럼 그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뭐든 잡힐 것 같다가도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간다. 움켜쥔 손을 펴보니 손 안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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