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허상이라고 해도

by 이서연

모든 건 허상일까, 너도, 나도, 지금도.

일요일 늦은 오후, 카페에 앉아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믿어왔던 것들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거라면 어쩌지, 그럼 나는 여태껏 무얼 찾아 헤맸던 걸까.

눈앞에 영어 교재를 펼쳐놓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마도 공부가 하기 싫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날이 꽤 덥다. 벌써 여름이 온 걸까. 봄을 채 느껴보기도 전에 이렇게 지나가버리다니. 조금 더 부지런히 봄을 느낄 걸, 후회가 됐다. 얼마나 더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을까. 지나간 것들엔 늘 후회가 남는다.

그래도 카페에서 나와 거리를 걷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푸르게 빛나는 거리, 적당히 선선한 바람. 어제의 외로움이 무색할 정도로, 세상은 눈부셨다.

모든 게 허상이라고 해도, 결국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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