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어느 오후, 나는 퇴근 후 여유롭게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와 있는 게 보였다. 거리가 꽤 되니 서두르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거리가 좀 더 가까웠다면 초록불을 놓친 게 꽤나 아깝게 느껴졌겠지. 어쩌면 그런 일들로 한순간 기분을 망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바로 눈앞에서 놓쳐버리는 일만큼 아까운 게 없다. 그래서였을까. 지금까지 눈앞에서 놓쳐버린 모든 것들이 그토록 후회와 미련으로 남았던 건. 마치 내가 가질 수 있었던 걸 가지지 못한 것처럼. 생각해 보면 애초에 가져본 적도 없었던 건데 말이다.
나는 예전부터 무언가에 완전히 빠져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영화를 수십 번씩 본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나 노래가 뭐냐는 질문은 늘 곤혹스러웠다. 좋아하는 건 많지만,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게 나에게 꽤나 큰 고민거리였다. 사랑하는 게 없다는 것. 그건 마치 눈앞에서 초록불이 깜빡이고 있는 것처럼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런 나에게도 얼마 전, 사랑하는 도시가 생겼다. 그동안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좋다고 느낀 적은 많았지만, 사랑한다는 감정이 든 적은 없었는데, 나에게도 그런 곳이 생겼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사랑을 모르는 거였다고. 느리더라도, 사랑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