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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터널을 나가봐야 알듯

by Faust Lucas

3화
운명의 날이 밝았다. 2035년, 북한과의 연방제 표결이 예정된 날. 대한민국 전역은 숨 막히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사람들의 눈은 온통 뉴스 속보와 온라인 생중계에 고정되어 있었다. 국가의 미래가, 아니 어쩌면 국가의 존폐 자체가 결정될지도 모르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긴장감은 국회의사당이 위치한 서울 여의도에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국회 주변 도로는 이른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연방제 찬성파와 반대파 시위대가 뒤섞여 거대한 인파를 형성했다. 특히 '나라를 지키자', '매국노 처단'을 외치는 보수 성향의 연방제 반대 시위대, 그중에서도 '태극기 부대'라 불리는 집단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낡은 태극기와 성조기가 물결쳤고, 확성기에서 쏟아지는 구호와 연설,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시위대 간의 고성으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경찰 병력은 삼엄한 경계를 서며 시위대와 국회 건물 사이에 거대한 인간 방벽을 구축했다. 공기는 분노와 불안,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력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마치 거대한 화약고 같았다.
그 아수라장 속, 시위대의 물결 사이사이에 이질적인 존재들이 섞여 있었다. 낡은 점퍼와 등산복 차림, 혹은 시위대 구호에 맞춰 함께 손팻말을 흔들고 있는 노인들. 겉보기에는 여느 시위 참가자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달랐다. 격앙된 주변 인파와 달리, 그들의 눈에는 냉철한 집중력과 단단한 결의만이 담겨 있었다. 이들이 바로 쿠데타를 실행할 소수의 정예 세력, 기존의 지치고 잊힌 '실버군단'과는 차원이 다른 훈련과 목적의식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시위대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거나, 국회 주변의 특정 건물 및 지점에 미리 잠복해 있었다. 특히 태극기 부대의 대규모 집회는 그들의 움직임을 숨기기에 최적의 은신처가 되었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의 해변 마을. 작가 김작가는 한적한 카페가 아닌, 보안이 강화된 임시 거처에 스티브가 미리 설치해 준 장비들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여러 대의 모니터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 대한민국 전국의 통신 트래픽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그래프, 주요 뉴스와 소셜 미디어 피드, 그리고 여의도 국회 주변의 보안 카메라 영상 및 드론 영상까지. 옆방, 혹은 다른 대륙의 어딘가에 있을 스티브와는 암호화된 통신 채널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은 물리적 혼돈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디지털 통제실이었다.
"한국 통신망 트래픽, 평소 대비 300% 상승. 주로 여의도 지역 집중. 시위대 통신량 폭증 중. 해킹 시도 감지 없음." 스티브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감정 없이 오직 데이터만을 전달하는 목소리였지만, 그 이면에 엄청난 기술력이 뒷받침되고 있음을 김작가는 알고 있었다.
김작가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긴장감을 애써 억눌렀다. 그는 스티브에게 쿠데타 세력으로부터 받은 '우호 세력' 및 '핵심 리더'들의 통신 단말기 정보와 특정 지역의 통신 선별 활성화 조건을 전달했다. 스티브는 그 정보를 스타링크 네트워크 시스템에 입력하며 최종 준비를 마쳤다. 전국적인 통신 두절. 미리 선정된 소수만을 위한 제한적인 통신망 가동. 이 모든 것이 스티브의 손끝에서, 그리고 그 정보를 전달하는 김작가의 판단 아래 이루어질 참이었다.
"통신 통제 시스템 최종 확인. 작전 개시 신호 수신 즉시 전국망 차단 가능. 작가님이 제공한 화이트리스트(Whitelist) 대상 통신망 우회 활성화 준비 완료. 예상치 못한 시그널 패턴 감지 시 작가님께 자동 알림 설정." 스티브는 기계처럼 보고했다. 그의 능력은 경이로웠지만, 동시에 그 능력이 지금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지 생각하면 김작가는 등골이 서늘했다.
시간이 흘렀다. 국회 본회의가 시작될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의도의 시위대 함성은 더욱 거세졌고, 국회 건물 안팎의 경비 병력은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김작가는 화면 속에서 숨어 있는 쿠데타 세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시위대 속에 섞여 있던 그들의 일부가 슬그머니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특정 건물 입구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감지되었다. 은밀하게, 하지만 망설임 없이. 그들의 눈빛에는 결연함만이 있었다.
그때, 김작가가 가진 별도의 보안 단말기에서 짧은 신호음이 울렸다. 쿠데타 세력과의 약속된 신호였다. 작전 개시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 김작가는 심호흡을 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그의 손에, 그리고 스티브의 기술력에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과 조국의 미래가 걸려 있었다.
김작가는 스티브에게 짧게 말했다. "신호 받았다. 준비해."
스티브는 군더더기 없이 답했다. "Ready."
여의도의 하늘은 여전히 시위대의 함성으로 가득했지만, 곧이어 그 소리마저 무의미해질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숨어 있던 칼날이 드러날 시간. 그리고 그 칼날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통제할 준비가 모두 끝났다. 거대한 폭풍이 대한민국 상공을 덮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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