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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Jun 27. 2021

[산티아고술례길]순례길에서제일가는멍청이 인증




가장 첫 번째 글 : #1 산티아고'술'례길의 시작  https://brunch.co.kr/@2smming/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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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8일 차
2018. 5. 21. 월요일
로그로뇨(Logroño)에서 하루 쉬는 날


드디어 쉬는 날! 

오늘은 로그로뇨에서 하루 쉬기로 (나와) 약속한 날이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빌바오 미술관'에 다녀오기 위해서다. 빌바오는 스페인의 북쪽에 위치한 데다 보통의 여행지와도 떨어져 있어 스페인을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이번에 걷는 까미노 프랑스 길이랑은 정말 가까웠다. 이번이 유일한 기회였다. 


로그로뇨(Logrono)와 가까이 있는 빌바오(billbao)


로그로뇨로 향하는 길 내내 신이 났다. 평소 가고 싶던 미술관에 갈 수 있다는 점도 그랬지만, 걷기를 잠시 쉴 수 있어서도 좋았다. 일주일이 긴 시간은 아니지만, 벌써 두 발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것만 같았다. 혹시 몸이 너무 놀라 멀미를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주접 같은 생각도 했다.  


처음으로 숙소를 2박*으로 예약할 수도 있었다. 그 말은 매일 아침 정신없이 싸던 짐을 오늘은 싸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로그로뇨에서 빌바오는 버스로 한두 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이라 마음 놓고 늦잠을 자도 상관이 없었다. 심지어 좋은 알베르게라 잠자리도 완벽했다. 제일 좋았던 건 로그로뇨를 찬찬히 더 잘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 순례길을 걷다 보면 늦은 오후쯤에 도착해서 > 숙소 체크인을 하고 > 샤워와 빨래를 하고 > 짐을 풀고 > 저녁을 먹을거리를 사면서 동네를 짧게 산책하고(늦게 도착한 경우엔 이마저 불가능하다) > 저녁을 먹으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 하루를 정리하며 잠에 든다. 그래서 도착하는 곳마다 여유롭게 둘러보지 못해 아쉬운 곳이 정말 많았는데 그러지 않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보통의 국공립 알베르게는 병 같은 큰 이유가 아니고서는 보통 1박을 원칙으로 한다. 사설 알베르게는 투숙일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다.



NO 계획의 폐해

옆으로 난 큰 창으로 아침 볕이 쏟아져 들어오고, 주변에 있는 수많은 나무들에 있는 새소리가 기분 좋게 내 잠을 깨우고 있었다. 습하지도 않은 공기에 적절한 실내 온도, 맨살에 닿는 바스락거리는 이불 촉감... 하루를 쉴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도 아주 산뜻하게 나를 깨웠다. 상쾌하게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켜는데 문득 불안한 기분이 날 덮쳤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온몸의 촉이 곤두세워졌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걷기 시작했으니 오늘은 월요일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오늘이 월요일 일리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 떠오르는 불안한 생각들을 무시하며 달력을 켰는데, 오늘은 월요일이 맞았다. 미술관의 보통의 휴무일. 월요일. 


우리나라야 월요일에 미술관이 쉬지만, 스페인은 다르지 않을까? 스페인은 시에스타도 있고 주 평균 일하는 시간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으니 아닐 수도 있어! 하며 애써 합리화를 해보려 했지만, 구글 지도 검색에도 월요일은 휴무. 구글 지도는 정확하지 않을 경우가 많지 않나? 하며 검색한 빌바오 미술관 홈페이지에서도 월요일은 휴무. 

 

그렇다. 나는 오늘 빌바오에 갈 수 없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순례길에서 하루가 통으로 붕 떠버렸다. 

근데 뭐, 떠버린 시간은 또 알차게 채우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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