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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Aug 29. 2021

본캐와 부캐 사이

주제 : 좋아하는 입을거리


 MBTI 과몰입러이자 ENFP인 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모든 ENFP 밈들을 보러 다닌다. 어찌 그렇게 내 마음을 짤로 옮겨 놓았는지. 아주 내 생각을 읽어 그대로 옮겨다 쓴 것 같다. 그러다 딱 하나, 공감할 수 없는 짤이 있었다. 바로 'MBTI별 옷 스타일'. 다른 유형 친구들은 점잖고 괜찮은 옷들을 골라줬으면서 ENFP는 타이다이 반팔 티셔츠란다. 난 단 한 번도 타이다이 티셔츠를 내 손으로 사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아무리 엔프피가 머릿속에 꽃밭이 가득 찬 이미지라고 해도 이건 좀 선 넘었지. 내가 좋아하는 옷들은 모두 심플한데?


'좋아하는 입을 거리'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도 깔끔한 옷들을 먼저 떠올렸다. 그러면서 옷장을 열었는데 세상에나. 내 옷 취향이 정확히 반반이었다. 정말 심플한 옷 반, 정말 현란한 옷 반. 사실 타이다이만 아니다 뿐이지 온몸을 감싸는 화려한 무늬가 옷장 한쪽에 우글우글했다. 기억들도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잃어버린 다채로운 우산들, 색색깔의 네일(심지어는 무지개색도 한 적이 있다), 연말에 사무실 책상에 놓는 금빛 트리 워터볼.


아아, 역시 엠비티아이 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내가 어떤 이유로 심플한 옷들을 하나둘 쟁인 것일까.

단순한 옷을 좋아하는 건 단순히 취향 탓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난 늘 내 생각의 가벼움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내 얄팍함은 이리저리 봐도 굉장히 깊었다. 책이나 영화도 많이 보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나이가 들다 보면 조금은 진중해 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경험을 해도 깊이 없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깨달았다(라고 쓰고 합리화했다) 아, 애초에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구나!


아마 그즈음인 것 같다. 내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얌전한 옷들을 평소보다 더 많이 쟁이기 시작할 때가. 물론 심플한 옷이 결코 생각의 깊음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내가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멋쟁이 커리어 우먼처럼 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 멋쟁이 옷들을 하나둘 사기 시작했다. 내심 나도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 옷장에는 본래의 자아와 추구하고자 하는 모습이 함께 차곡차곡 쌓여왔다.



극과 극



너무 극과 극이라 모양새가 웃기긴 하지만 이 옷장이 마음에 든다. 어른스럽고 싶은 열망이 어찌나 열렬했던지 싶다가도, 그 와중에 본성이 튀어나와 모양만 단순하고 색은 눈에 띄는 옷가지들도 있다. 눈이 아플 정도로 새-빨간 기본 라인 코트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고 있었던, 갖은 무늬의 옷들이 걸려있다.


이 정도로 비등한 비율이라면 아무리 생각을 깊게 할 수 없는 ENFP라 해도 전보다는 진중해지지 않았을까? 뭐,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가. 그것도 그런대로 좋다. 마냥 밝은 나와 점잖기를 희망하는 나 사이를 징검다리 건너듯 퐁퐁 뛰어 건널 수 있다는 뜻일 테니. 부캐가 트렌드가 된 지금과도 딱 맞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몇 년 전엔 진지한 글을 쓰려 인스타 부계정을 아무도 모르게 만들기도 했었다.


내일 아침엔 내가 오늘은 본캐가 되고 싶은지, 부캐가 되고 싶은지 살펴봐야 겠다. 그리고 가장 끌리는 옷을 입어야지.


글. 스밍 @2smming



<다함께글쓰계> 함께 쓰고 모으는 글쓰기 계모임.
내가 쓴 글은 한 편이지만, 같은 주제로 쓴 다른 글들이 모였을 때 생기는 즐거움을 느끼며 브런치, 인스타그램(@together.writer)에 함께 글을 써갑니다. 2021년 8월부터 시작된, 혼자 쓸 때보다 다 함께라 재밌고 든든한 글쓰기 계모임. 함께 글 쓰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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