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 인벤션 6번, BWV 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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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인벤션 6번, BWV 777
굴드 ver. : https://youtu.be/2iZN3NjFINI
날씨가 너무 더워 딱! 떨어지는 듯한 곡을 치고싶어 바흐의 인벤션 6번을 시작했건만.. 최악이었다. 마치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았다.인벤션 6번은 왼손과 오른손이 엇박으로 진행되며, 주선율도 왼손과 오른손에 번갈아 나타나는 곡이다. 주선율은 차지하더라도 계속되는 음표들과 엇박이 큰 문제였다. 건반은 계속 짚어야 하지, 어떤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러야 할 지도 혼란이었다. 엇박은 뇌에 무리를 줬다. 악보를 보는 눈, 정보를 인식하는 뇌, 움직이는 손이 따로 놀았다. 원격 방송처럼 소리는 한음씩 밀리고 어긋난 음들이 소음을 만들어냈다.
주선율이 왔다갔다 하는 것도 혼란을 보탰다. 그나마 원격 방송처럼 치는 건 봐줄만한 정도였다. 정보 범람에 뇌는 파업을 선언했고 좌뇌/우뇌는 번갈아가며 마비되었다. 미처 동공과 뇌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마음속의 의욕은, 뇌를 거치지 않고 곧장 엄지손가락으로 달려가 뜬금없는 포르테시모(fff)로 빰- 위용을 드러냈다. 선생님은 ‘어린 친구들이 바흐와 모차르트는 어른들보다 수월하게 치는 경향이 있어요.'하며 나를 달래려 했지만 울고 싶었다.
울게하소서 (Lascia chio pianga) - 파리넬리 OST
https://youtu.be/22Z3rqrCA3w
레가토가 아닌 논-레가토도 복병이었다. 레가토는 음과 음 사이를 이어서 연주한다면, 논레가토는 음과 음 사이를 이어 연주하지 않고, 음 사이의 약간의 텀을 느끼게끔 연주하는 방식인데(약간 메조 스타카토와 비슷하다), 레가토가 익숙한 내게 또 하나의 숙제였다.
그 와중에 왼손에 있는 주선율을 살리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마음으로는 천만번쯤 오른손 소리를 줄여야한다고 외쳤지만 오른손이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가뜩이나 잘 들리지 않는 왼손은 묻히다 못해 버벅거리기까지 했다. 많은 조표에 미스터치도 상당했다.
즉, 정리하자면 왼손과 오른손을 넘나드는 주선율,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왼손의 약진, 익숙하지 않는 손가락 번호, 그 와중에 음과 음 사이를 떼어줘야 하는 논레가토, 수많은 미스터치, 의욕이 빚어낸 갑작스런 포르티시모가 범벅된 채로 바흐도 뭐도 아닌 음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던거다. 누가 들었으면 현대 음악 작곡가냐고 물어봤을거다.
역시나 요행은 없고 진득히 앉아 연습하는 수밖엔 없었다. 은근슬쩍 옆으로 치워놓았던 하농도 꺼내들고 한 장도 채 되지 않는 악보를 거의 삼주를 씨름해가며 완성했다. 피곤하면 눈을 감고 연습을 했는데, 피아노 치면서도 사람이 잠을 잘수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다행히 선생님 말처럼 처음엔 거슬거슬한 화강암같던 연주가 매끈한 대리석에는 닿았다. 그래도 당분간 바흐는 멀리하는 걸로. 아마, 내년 여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