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을 걸으며 생각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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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긴 모두가 내 안부를 물어봐주는 마법같은 곳이다. 모두가 눈만 마주쳐도 Hello, Hola, Bonjour, Buen Camino 인사하고, 쉬려고만 앉아도 지나가던 이들은 나를 살피려 걸음을 멈춘다. 오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Is everything okay?" 였다. 남들이 내 안위를 자꾸 살피니 나도 나를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정말 나는 괜찮은 건지 하고 말이다. 괜히 목을 긁적거릴 만큼 이런 모습이 어색하다. 얼마나 많은 날들동안 나는 나를 살피지 않고 살았던 걸까.
2. 그 높고 넓은 산을 대여섯시간 남짓 혼자 걸으니 두려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사람이라고는 나혼자였고, 자연에 고립되어 오랜 시간동안 사람이 내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내 두려움의 모양은 자연에 대한 경외에 가까웠다. 문득 대학생 때 들었던 '서양미술사' 강의에서 교수님이 경외라는 관념을 설명하며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를 보여주셨던게 생각났다. 그땐 머릿속에 집어 넣기 바빴었는데 이제서야 그가 느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에 대한 경외'라는 말에는 두려움이 존경의 비중보다 크지 않을까 생각했다.
3. 산티아고를 걷다보면 의외로 별 생각이 없어진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 지금 내 발은 괜찮은지, 얼만큼 더 걸어야 하는 지 등의 현실적인 생각에 도달한다.
4. 나는 나를 사람 관계에서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붙이는게 자연스러운 사람. 하지만 오늘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여지껏 내가 믿고 있던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닌, 내가 원하는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째날, 하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