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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Nov 14. 2020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에스테야부터 로스 아르코스 - 산솔, 다시 로스 아르코스



가장 첫 번째 글 : #1 산티아고'술'례길의 시작  https://brunch.co.kr/@2smming/52 
이전 글 : #15 와인 무한 리필, 이라체 수도원 https://brunch.co.kr/@2smming/69


산티아고 순례길 6일차
2018. 5. 19. 토요일
에스떼야(Estella) -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21,4km


 점심을 먹으러 로스 아르코스(Los Arcos)로 향하는 길은 유채꽃이 가득했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노란 꽃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3월 초에 피는 꽃인데 5월에도 여전히 이 꽃을 볼 수 있다니 생경했다. 마치 올해에는 봄을 두 번 선물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끔씩 멈춰 꽃밭을 안주 삼아 마시는 와인이 풍경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걷다가 물 대신 와인을 마시는 것도 종종 해볼 만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좀 더 걸어 산솔(Sansol)까지 가려 배낭을 동키*로 보내 놓았다. 점심을 먹을 시간쯤 마지막 거쳐가는 마을,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했다. 점심이나 먹을 겸 수지와 웅민이에게 물어보니 둘도 곧 여기에 도착한다고 했다. 둘은 오늘 여기 알베르게에서 머물 예정이라고도 했다. 시간이 남은 나는 여기저기 마을을 돌아다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나서 처음으로 맞은 주말이었다. 주말답게 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레스토랑 테라스는 이미 만석이었고, 광장과 공원은 가족들로 가득했다.


*동키 :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이용할 수 있는 짐 옮김 서비스. 일반적으로 순례자 숙소에서 또 다른 순례자 숙소까지 짐을 배달할 수 있다.  

 


 얼른 레스토랑에 앉았다. 테라스 자리는 거의 만석이라 가까스로 한 자리를 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샹그리아 하나씩을 마시고 있었다. 우리도 빠에야와 샹그리아를 먹고 마시며 스페인의 햇볕을 한없이 쐬었다. 더운 날씨에 얼음까지 동동 띄워지니 완벽했다. 샹그리아가 담긴 유리병 밖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샹그리아 맛은 말(해) 모(해). 얼음을 넣었다고 밍밍해지지도 않고 아주 찐한 게 쌍화탕 같았다. 산솔까지 동키를 보낸 내가 원망스러웠다. 지금 딱 좋은 기분에 낮잠까지 자면 완벽한데.



 거리에는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오늘은 마을의 소축제 날이라고 했다. 말을 들으니 아까부터 느껴졌던 들뜬 분위기가 이해가 갔다. 웅민이와 수지가 축제는 꼭 즐겨야 한다며 나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럼 어쩌나, 내 배낭은 산솔에 있는데. 그러다 갑자기 내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나 했다.

같이 택시 타고 산솔에 가서 내 배낭을 가져오기, 택시비는 N빵으로.

 세상에, 이건 거부할  없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산솔로 갔다. 머물려고 했던 알베르게에 전화해 오늘 머물  없자고 말하자 호스피탈로가 정말 놀라며 내게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었다.  말이 없어 머뭇거리자 호스피탈로가 혹시 지금 몸이 많이 좋지 않나며 되물었다. 차마 '샹그리아    잔을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흥이 올랐고, 축제라는데 열심히   놀아보려고요.'라고 말할  없어 다리를   같다는 말로 무마할 수 밖에.


 가져오는 과정도 험난했다. 하필이면 리셉션이 있는 쪽이 통유리였다! 택시에서 또박또박 내릴 순 없으니 어기적어기적 다리가 아픈 척을 하며 걸었다. 인사를 하고 내가 수영이라고 말했는데 걱정스레 건네주는 말이 가득했다. 여기까지 왔은 쉬고 가도 괜찮다며 치료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날 생각해줘서 너무 고마우나 점프*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무마했다. 이렇게 신성한 길에서 거짓말이라니, 성당에 도착하면 고백성사를 해야할 거리가 생겼다.


그렇게 다시 축제의 땅, 로스 아르코스로 향했다.


*점프 : 순례길에서 마을과 마을 사이를 두 발이 아닌, 교통수단으로 이동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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