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밍 Nov 22. 2020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feat.NCT)

로스 아르코스 소몰이 축제 즐기기 -  산티아고 순례길 6일차



가장 첫 번째 글 : #1 산티아고'술'례길의 시작  https://brunch.co.kr/@2smming/52 
이전 글 : #16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https://brunch.co.kr/@2smming/72


산티아고 순례길 6일차
2018. 5. 19. 토요일
에스떼야(Estella) -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21,4km



로스 아르코스의 소몰이 축제

  아까 먹었던 샹그리아가 아른거려 먹은 지 2시간 만에 다시 그 레스토랑에 갔다. 샹그리아 두 병을 비우고 나오니 축제 준비가 거의 끝난 모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광장의 골목골목을 울타리로 막아놓고 소를 몰이할 사람들만 남기고는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마을 같았는데 모여든 인파가 상당했다.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광장 끄트머리가 보였다. 벌써 높은 곳에 올라가 자리를 잡은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도 목이 좋은 자리를 찾아 얼른 섰다.  


 사람들의 탄성과 함께 검은 소가 보였다. 어제 TV에서 보았던 투우 경기의 그 검은 소였다. 소몰이들은 소들을 부르고, 도망 다니고, 뛰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휘파람을 불면서 소들을 교란시키고 있었다. 사실 무엇을 위해 소몰이를 하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소를 피해 다니는 소몰이꾼들의 쇼맨십을 보는 재미는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있는 마을 축제 분위기도 생경했다.  



 흥부자와의 만남

 축제가 펼쳐지는 가운데 한쪽의 바(bar)에서도 야외 테이블을 깔기 시작했다. 커다란 스피커와 음악, 그리고 술이 함께였다. 여러 곳에서 음악이 서로 터져 나왔지만 소리가 꽤 조화롭게 섞였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스탠딩 테이블에서 벌써 맥주를 마시고 있던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들도, 신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모두 흥겹게 씰룩거렸다.  


 한창 춤판이 벌어진 가운데, 눈에 확 띄는 비범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상하의를 하얀색으로 맞춰 입고 힙한 선글라스를 쓰고는 무아지경에 빠진 분이었다. 길거리를 압도하는 비상한 춤사위와 지나가는 사람마저 동화시키는 친화력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선을 느꼈는지 곧장 우리에게 와서 함께 춤을 추자고 했다. 거절할 수가 있나. 안 그래도 흥이 오르던 차였다. 나는 그분의 손을 덥석 잡고는 춤판의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tmi. 내 MBTI는 ENFP다)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한데 섞여 하늘로 흩어지는, 이런 꿈같은 곳에서 춤을 추는 기분은 정말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외국의 이름 모를 길거리에서 이렇게 환한 대낮에 춤을 추고 있을 줄은, 심지어 그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와중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으로 춤을 췄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추임새가 행복에 양념을 뿌렸다. 마주치는 순간마다 주고받는 눈길과 미소는 거리에 낭만을 보탰다. 모두의 얼굴에 근심은 단 한 톨도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좋고, 좋고, 또 좋았던 하루

한껏 춤을 추다 목이 말라 진토닉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데, 바텐더 아저씨가 아주 큰 잔 세 개를 툭툭 앞에 놓더니 푸어러도 꽂혀 있지 않은 진(gin)을 마구 붓기 시작했다. 정말 그대로 콸콸콸 부었다. 한국에서는 진토닉을 시키면 딱 진을 정량만큼 주는데 여긴 눈대중도 하지 않고 그냥 막 부었다. 심지어 우리가 좋아하자 진을 더 줬다. 여태까지 먹은 진토닉은 항상 토닉이 더 많았는데 여긴 진이 더 많았다. 맛도 있는데 가격까지 저렴했다. 단돈 5유로. 한국 돈으로는 약 7,000원 정도 되는, 요즘에는 진토닉 한 잔을 시키기에도 모자란 값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한국에선 세 잔 정도 될 법한 양이었다. 단돈 5유로에 이런 천국을 건네주시다니. 배우신 분에 틀림없었다.



 우리는 진토닉을 들고 햇빛을 피해 그늘에 앉았다. 앞에서는 저녁에 있을 축제를 위해 무대 세팅이 한창이었다. 밴드가 나와 몇 번 합을 맞춰보고, 마이크 테스트를 하고, 악기를 튜닝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는 커다란 호른 같은 걸 든 관악대가 돌아다니며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둥실둥실 춤을 췄다. 온통 음악과 햇빛뿐인 거리에서 마시는 술은 금방 우리를 물렁해지게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쳐다보는 아이가, 합을 맞춰보다 삑사리가 나는 밴드가, 코끝에 스치는 가벼운 여름 바람이 정겨워 자꾸 자주 웃었다. 모든 게 좋았다.


 우리는 돌 위에 앉아 계속해서 '좋다'라는 말만 뱉어내고 있었다.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못 배겼기 때문이다.이토록 완벽한 공간에 혹여라도 틈이 생길까 '좋다'라는 말로 메웠다. 순간 느꼈다. 이 순간은 내가 평생을 영영 그리워할 순간이구나. 


나는 지나가고 있는 지금이 벌써 그리워졌다.  


돌에 앉아 보았던 무대 세팅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