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밍 Feb 21. 2021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산티아고 순례길 6일차




가장 첫 번째 글 : #1 산티아고'술'례길의 시작  https://brunch.co.kr/@2smming/52 
이전 글 : #17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feat.NCT) https://brunch.co.kr/@2smming/73


산티아고 순례길 6일차
2018. 5. 19. 토요일
에스떼야(Estella) -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21,4km



Buen Camino

 새벽까지 축제를 즐기고 싶었지만 내일을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나만 아쉬운 건 아니었나 보다. 알베르게 거실에 모이니 많은 사람들이 축제의 여운을, 오늘 하루의 여운을 나누고 있었다. 아는 얼굴도 꽤 보였다. 젊은 한국인 커플도, 조셉도, 미할도, 리카르도와 마르셀로도 있었다. 아까 이라체 수도원에서 미할과 같이 와인을 마시고 있던 리카르도와 마르셀로는 이미 거나하게 취해 눈이 풀려있었다. 옆에는 쌓인 맥주 캔이 가득했다.


 길에서 자주 마주쳤지만 인사만 나누었던 한 부부도 만났다. 포르투갈에서 온 빌레니, 바뇨였다. 오늘 걷고 있는 나를 찍었다며 사진을 보여줬는데, 비슷했지만 내가 아니었다. 덕분에 이야기의 물꼬를 터, 어디를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우리가 마주쳤던 곳들은 어딘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생각보다 많은 우연이 겹쳤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다 빌레니가 불쑥 내게 물었다.


“이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왜 네게
Buen Camino라고 인사하는지 알고 있니?”


 사실 나도 궁금한 차였다. 스페인어로 직역하면 'Buen'은 좋은, 'Camino'는 길이라는 뜻이라 프랑스어의 'Bon voyage'나 우리나라의 '안녕히 계세요' 정도의 가벼운 인사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빌레니와 바뇨는 좀 더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Buen Camino'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의 모든 걸음과 순간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길에서 다치더라도,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길이 당신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소망, 그리고 얼른 다 괜찮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 여기서 겪은 나쁜 일들 또한 당신에게 또 다른 의미로 가닿을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담아 전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Buen Camino'라고 인사할 때는 마음을 가득 담아 전해야 한다고도 했다.


"Su,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너의 안녕을 빌고 있는 거야."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이었다. 이렇게 고운 마음들을 가지고 나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었다니. 스치는 인연에도 온 마음을 다하고 있었다니. 빌레니와 바뇨가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풍선처럼 커져 나를 꽉 껴안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길에서 받아왔던 따뜻한 마음씨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모양이 생긴 순수한 마음들은 밀려오다 못해 한번에 나를 덮쳐 눈물이 터졌다. 그런 나를 빌레니와 바뇨는 함께 눈물지으며 안아주었다.


한참 빌레니와 바뇨와 울다가 마음을 달래러 거실에 나갔는데 마침 미할이 있었다. 

미할에게도 물었다.


‘미할, 넌 까미노(산티아고 순례길)가 뭐라고 생각해?'


미할은 잠시 생각하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개구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It's your way, Anyway."


 그러면서 덧붙였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국, 여긴 너의 길이야. 다른 상황들이 너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어. 여긴 온전히 네가 걷는 너의 길이니까. 그러니까 뭐든 괜찮아. 네가 아프더라도, 어려운 일에 처하더라도 곧 괜찮아질 거야.


"그럼 사람들은 왜 내게 Buen Camino라고 하는 거야?"

"일종의 응원인 셈이지. 열심히 걸어가라고.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넌 결국 이겨낼 거고, 모두가 네 옆에서 함께 걷고 있다고 말해주는 게 아닐까?”


 빌레니와 바뇨, 미할이 말하는 건 결국 같았다. Buen Camino는 단순한 인사말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사람들에게 바람을 꾹꾹 담아 전해줄 때에서야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주문처럼.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여지껏 넘치게 받아왔던 고마운 인사들을 하나하나 짚었다. 돌이켜보니 모든 인사들이 지나치게 정겨웠다. 눈을 마주치고 전해주었던 수많은 진심들. 나는 알베르게 침대 구석에서 괜히 코를 훌쩍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 만날 많은 친구들에게 나 역시도 마음을 눌러 담아 그들의 안녕을 빌어줘야겠다고. 진심을 가득 담아서.


순례길은 감정의 임계점이 낮아지는 곳이자 감정에 순수해질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매순간 모든 감정에 충실하게 된다. 만약 내가 생활하는 도시에서 분명 같은 대화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울리지는 않았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오늘처럼 마법같은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진심이 그득히 담겨있기 때문일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feat.NC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