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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ug 17. 2022

희망과 낙관주의의 차이

나와 당신을 일으켜줄 책10│02 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이 콘텐츠는 책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의 메세지를 토대로 제작되었습니다.

- 허지원 저│김영사 출판



<희망과 낙관주의의 차이를 알면 지향해야 할 태도가 보인다.>     


희망은 ‘낙관주의(optimism)'와 이렇게 다릅니다.


희망 = 부정적 상황 안에서 그럼에도 노력하고 있음에서 느끼는 가치.
낙관주의 = 부정적 상황을 외면하고, 책임이나 노력을 미루는 행위.     



º ‘희망’의 진짜 의미


희망이라는 말은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덧없어 보이고, 가벼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에서 희망이라는 개념은 그 무게감이 상당합니다.  희망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무망감은 자살을 예측하는 강력한 위험 요인이기도 합니다. ‘희망’은 쉽게 해결 가능한 문제 상황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보통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험합니다. 



가령, 지진이나 대유행병, 그리고 내가 어쩌지 못하는 심리적 고통이 재난처럼 다가올 때에야 경험할 수 있는 특이한 인지적, 정서적 상태가 바로 ‘희망’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이런 희망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그 희망의 실현 가능성을 ‘반반’ 정도로만 평가한다는 겁니다. 정말 그 일이 잘될 것만 같아서 희망을 느낀 게 아니라는 얘기지요.


사실 희망을 경험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는 개인의 주체성입니다. 내가 내 삶이 애틋하고 짠해서 스스로를 잘 먹이고 재우고 입히려고 할 때, 그리고 당면한 문제에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나서겠다 결심할 때, 어느 순간 낯설고 간지러운 기대가 생긴다면 그것이 희망입니다.



다시 말해 희망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아니라 ‘불운과 부조리 속에서도 내가 지금 뭐라도 노력하고 있어서 느끼는 가치’입니다. 성공할 가능성이 너무 낮기 때문에 희망을 버린다고들 하지만, 틀렸습니다. 심리학적으로 확률은 희망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행동만이 내 희망을 정의합니다.     



º ‘낙관주의’가 지닌 민낯


반면 낙관주의적 관점이란, 나 아닌 누군가, 혹은 나보다 더 강력한 힘이 이 상황을 해결할 것으로 봅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절대자, 어른, 멘토, 아니면 벼락같은 운을 믿으며, 이들이 나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동안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겠죠. 낙관주의적 백일몽에 빠져 있는 시간은 무력감을 배우는 시간에 불과합니다.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일 에너지는 줄어들고 자신에 대한 평가는 더 가혹해져 손에 남는 결과물은 적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로 자기 주문을 거는 일이 성공이나 성숙의 기회를 오히려 줄인다고 경고합니다.     


행동할 힘을 잃게 하는 냉소주의나 난관주의는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생을 보호하고 내일의 일상을 귀중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현실적인 희망입니다.  


허황된 낙관이 아닌 무거운 희망이, 당신에게 웃어도 되고, 즐거워도 되고, 사랑해도 되고, 가벼워도 된다고 일러주며 당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 출처: 김영사, 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른다>



글: 이소 │insta: @2st.so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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