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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ug 25. 2022

열심보다 진심으로 (하)

 1부 먼저 읽을까봐요


Photo by @babybluecat on Unsplash


 영화「앙 단팥빵 이야기」는 작은 도리야키(팥소를 넣은 화과자) 가게에서 같이 일하길 원하는 한 할머님과 청년사장의 연을 담아냅니다.     


 청년 사장은 자신의 일에 별다른 뜻이 없어 보입니다. 스스로 보잘것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탓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자기 일에 딱히 애정을 갖지 않는다는 건 그의 표정만 봐도 대번에 티가 나더라고요. 매일 거르지 않고 꽤 열심히 장사를 하곤 있지만, 매상에는 그렇다 할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할머님이 일을 대하는 태도에 감복한 뒤, 거꾸로 그녀로부터 일을 배우고, 삶의 태도까지 배우게 됩니다.     

 

 청년이 배운 것은 다름 아닌 ‘정성’이었습니다. 할머님께선 분명 당신의 일에 모든 정성을 쏟는 분이셨어요. 이미 제조된 단팥을 주문해서 장사해오던 사장에게 할머님은 진심으로 조언합니다.


 “젊은이, 단팥은 마음으로 만드는 거야. 단팥은 손수 만들어야 해.”     


 그리고 다음 날 할머님과 청년사장은 새벽부터 가게 문을 열죠. 잠시 뒤 장사할 때 쓸 단팥을 직접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이때 단팥의 제조과정이 담긴 장면은 제 인생 명장면 중 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물론 영상자체로도 매력적이었지만, 그 과정 동안 할머님의 표정과 말씀들이 정말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이제 그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곧 단팥을 만들 생각에 할머님은 재밌는 놀이를 앞둔 아이처럼 신이 나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님께서 설레셨던 이유가 의아해 질만큼, 단팥이 만들어지는 절차는 아주 길고 복잡하더군요.   

   


 단팥 제조의 시작은 청년이 미리 불려둔 팥을 끓이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삶아진 팥은 찬물에 충분히 헹궈야 했습니다. 제대로 헹구지 않으면 팥의 떫은맛이 그대로 남기 때문이죠. 

 팥을 꼼꼼히 헹궜다면, 이제 다시 냄비에 넣고 푹- 삶을 차례인데요. 꽤 오래 고와야 하기에 이제부터 할 일은 숙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일이었죠.      


 어느새 김의 냄새가 달라지면 드디어 다 삶아진 겁니다. 그러나 바로 물에 헹구는 게 아니라 좀 더 뜸을 들여야만 합니다. 벌써부터 단팥을 만드는 일이란 아주 오랜 시간과 정성을 담뿍 담아야 하는 작업이리란 짐작이 되죠. 아무리 힘쓰는 일을 청년이 대신 한다지만, 이 긴 과정 안에서 할머님은 연신 웃음을 잃지 않으세요. 단 한 번의 지루한 내색 없이 최대한의 정성을 들이실 뿐입니다. “(팥을) 극진히 모셔해 해. 밭에서 여기까지 힘들게 와줬으니까.”     

 

 그녀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즐겁기만 합니다. 결코 대충하거나 서두르시는 법이 없고, 정말 푹 빠져 계셨어요.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모든 근심을 잊으신 것처럼. 그 모습을 보며 ‘저 기분이 순간에 온 정성을 쏟을 때만이 누릴 수 있는 해방감이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뜸 들인 팥을 찬물에 헹굴 차례인데요. 말랑해진 팥이 으깨지면 안 되기에 물줄기는 아주 약하게 틉니다. 연필 한 자루 정도의 굵기 정도로 아주 약하게요. 역시나 팥이 모두 헹궈질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삶는 과정에서 색이 탁해진 팥물이 모두 걸러져 투명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거든요. 단판을 만드는 일이란 모든 과정이 ‘기다림’이었습니다.    

 

 마침내 삶아진 팥을 당과 함께 버무릴 차례! 버무려진 팥을 마지막으로 삶기만 하면 단팥이 모두 완성됩니다. 그런데 할머님께서 냉큼 삶으란 지시 없이 다시 자릴 잡고 앉으십니다. 그런 채 쭉- 오래 앉아계실 요량으로요. 청년은 기가 막혀서 묻습니다.      


“(설마) 또 기다려요?”

“갑자기 끓이는 건 실례잖아. 당과 친해질 동안 기다려줘야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죠?”

“두 시간.”

“두 시간이요? (충격)”      


 할머님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시곤 쪽잠을 청합니다. 아주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로요. 그 표정은 분명, 팥을 쑤는데 온 기운을 쏟아냄에 대한 흡족함이었습니다.  

 반면 사장의 두 눈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란 표정이었죠. 그러나 완성된 단팥의 맛을 봄과 동시에 그의 눈은 휘둥그레집니다. 그 눈은 분명, ‘반드시 이렇게 해야 했구나.’란 표정이었어요. 그리고 이야기하죠. ‘이런 단팥은 처음입니다.’      


 며칠 뒤, 청년의 도리야키 집은 성수동의 작은 빵집처럼 전에 없던 문전성시를 이루게 됩니다.   



 할머님으로부터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지금 하는 일이 좋아서 하는 일이든, 좋아하는 일에 다가서기 위해 하는 일이든, 지금 당장 마땅히 해내야 할 일이든, 혹여나 주변의 평판이 미적지근한 일이든, 그 일의 가치는 오롯이 행위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만일 도리야키 장사에 별 의미를 두지 못한다면, 극중 청년이 그랬듯 그 일에 심혈을 기울일 리 없을 거예요. 당연히 그 일은 별 가치를 지니지 못하겠죠. 그러나 같은 일이라도 그것이 아주 신성한 일이어서 섬세한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 여겼을 때, 그 일이 절로 굉장한 가치를 갖게 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게다가 단지 살기 위해 무얼 하는 사람과 무얼 함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의 하루는 다를 수밖에 없나 봅니다. 행위에 대한 애착은 생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마음속 이상향과 행동이 일치하는 순간, 그래서 행복에 대해 생각지 않게 되는 순간. 이대로 온전히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들의 표정(성수동 빵집 사장님과 영화 속 할머님)이 분명 그렇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열심히 한다.’와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같은 말 같진 않습니다. 열심히 한다는 건 이성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거지만, 정성을 다한다는 건 감정의 통제 없이도 몰입하게 되는 일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정성을 ‘쏟는다.’고 표현하죠. 정성이란 단어를 설명할 때 ‘쏟다’만큼 적합한 동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쏟는다는 건 왈칵 들이붓는단 뜻이잖아요. 거기에는 정도가 없습니다. 일단 마음먹었다면 온 정신과 힘을 조금도 남김없이 모조리 쏟아붓는 일이죠. 그 순간에는 어떠한 의심이나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게다가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저 열심히 임했을 땐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정성을 다했을 때는 충만한 기분이 차오른단 겁니다. 분명 후자가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함에도 말이에요. 아마 단순 소모로 끝나지 않기 때문일 테죠. 정성을 다했다면 그 자체로도 만족감을 줄뿐더러, 결과에 따른 성취감을 만끽하게 될 가능성도 커질 테니까요.

 성수동 빵집 사장님과 영화 속 할머님처럼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담뿍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를 통해 활력과 보람을 충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제게 놓인 일들은 조금도 줄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즐거운 마음으로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날 밤 제 방의 스탠드는 꽤 오랜 시간 제게 ‘정성으로’ 빛을 쏟아주었습니다.



◐ 연재 시리즈:  <작품에 기대어 내일을 기대해> 중 

◑ 글: 이소 │instagram: @2st. soar  



- 출처 -


º이번에 기댔던 작품│영화: 가와세 나오미, 「앙: 단팥 인생 이야기」, 2015

ºPhoto by @babybluecat on Unsplash

ºPhoto by 영화,  「카모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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